Showdown
Showdown by jsnel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독일의 천재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살인마' 히틀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암살'이라는 것은 일단 사람을 속여야 하는 일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기에 촉망받는 신학자인 그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차를 몰고 돌진하는 어떤 미친 운전자(히틀러)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운전대를 빼앗기 위해" 거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 상황에서는 '정의와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암살 계획은 그러나 수포로 돌아갔고 본회퍼를 포함한 저항 동지들은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본회퍼는 1945 49,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사형됐다. 본회퍼의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 그리고 '정의와 평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독재자가 목에 총을 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할 때 우리는 진심을 감추고 따른다. 비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살겠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심'을 드러내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진실'을 위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진심'을 숨긴 사람을 비겁하다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스포츠계에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호세 칸세코가 '메이저리그 스테로이드 사용'을 폭로하기 전까지 이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진실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인가. 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혼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스테로이드 사용은 잘못된 일인데..."라고 생각하면서 폭로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물론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이를 '장려'했던 리그의 고위 관계자들은 명백한 '거짓말쟁이'였다.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은 수년 전 "단장이 되고 싶지 않은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단장은 거짓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 프로 스포츠의 단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야(You are a liar)"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는 아주 '얇은 선(thin line)'이 있다. 단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그러나 '집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자의 질문에 거짓 답변을 했다면 그 단장은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줄어든다. 물론 '얇은 선' 때문에 '진실과 거짓'은 그것을 쉽게 넘나드는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는 맹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싸워요. 싸울 때 입에 담기 어려운 더러운 욕도 하고 때로는 폭력도 써요"라고 어떤 점잖은 남자 또는 여자가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하자. '진실'을 말하긴 했지만 이는 '거짓말'보다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황우석 박사는 아마 이 '진실과 거짓'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진실'을 말했을 때의 파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다보니 점입가경이 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USC의 풋볼 스타였던 레지 부시는 부모가 아마추어 선수인 아들의 능력을 이용해 불법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음에 따라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는 "부모의 재정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에서 살던 부모가 70만 달러가 넘는 고급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그 뒷배경을 큰아들이 모를 리 없다. 부시는 앞으로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부시가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를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진실'을 고백하면 이 일과 상관없는 소속학교(USC)가 엉뚱한 피해(2005년 성적 몰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을 놓고 고민할 때 이것이 '정의와 평화(질서)'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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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용사 벡터맨
채널/시간 챔프 방송종료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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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국내배우
출생 1973년 5월 23일
신체 키185cm, 체중7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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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라는 배우가 과거 '벡터맨'으로 출연한 것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벡터맨'은 지구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를 읽으면 정의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모릅니다. 세 보지는 않았지만 수십 번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정의는 영어로 Justice입니다. 히브리어로는 Tsedaqah (쩨다카)라고 합니다. 성경을 기초로한 정의를 설명드리고자 하기에 히브리어 원어인 “쩨다까”가 무엇 의미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쩨다까‘는 ’속박에서 건져내는 정의(Justice), 커뮤니티를 회복시키는 정의(Justice)‘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Justice라는 단어는 성경에 1천 회 이상 나오는데 대부분이 ”쩨다까“에 속한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정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비해 수십배 더 자주 성경에 등장한다고 하니 하나님이 ”쩨다까“를 얼마나 중시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시 하셨다의 시제는 현재 완료형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의’하면 ‘나쁜 사람과 대적해 싸우는 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저 '벡터맨' 수준 정도만 생각했습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의에 대한 메시지는 주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저 악한 무리와 싸우는 일이 목표이면 결국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물론 아주 극한 상황에서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폭력적인 정의로운 일은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정의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속박에서 건져내고 커뮤니티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고용주는 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거의 노예 부리듯이 합니다. ‘정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근로자들을 속박에서 건져내고 커뮤니티를 회복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의를 실현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럴 때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면 둘 다 이뤄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상호간에 감정만 더 상하게 되는 것이지요. 비폭력적인 저항, 평화적인 저항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 선생,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함석헌 선생 등은 비폭력적 평화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정의’를 실현시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민들도 민주화 운동 당시 비폭력적인 저항으로 군사 정부를 항복하게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3.1 운동이 바로 비폭력적인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폭력적인 저항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폭력적인 저항을 최대한 시도해보고 협상과 모든 것이 막혔을 때 마지막 카드로 들고 나오는 것이니 처음부터 폭력적으로 나서면 그것은 진정으로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From the Pulpit
From the Pulpit by danny.hammontre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예를 들어, 히틀러 암살단이 조직된 것은 비폭력적 저항마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수단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는 “쩨다까”이고 이는 ‘속박에서 건져내는 정의, 커뮤니티를 회복하는 정의’라고 했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상황에 발생했을 때 우리는 이 개념을 염두에 두고 ‘부정’과 싸워야 합니다. 근로자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이를 비폭력적으로 저항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겠고 이들이 다시 해당 업체에서 일하고 경영진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저항을 준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끊임없는 대화와 여론 조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평화 시위를 자주 해야 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속박에서 벗어남’과 ‘회복’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잊고 감정적으로 대처할 경우 ‘정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의의 사도 벡터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예수님처럼 지혜로운 "쩨다카 맨'이 필요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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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을 보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신명기 25장의 규정은 직접적인 적용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악인에게 40대 태형을 준다든가, 형제가 사망하면 그 아내를 다른 형제가 데리고 산다든가, 두 사람이 싸우는데 아내가 상대 사람의 음낭을 잡으면 손을 찍는다든가 하는 것은 오늘날 적용하기 어려운 규정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나타난 정신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질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세밀하게 준비한 규정들을 보면서 모세가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한 분인지 알게 됩니다. 이곳의 율법들은 모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것들입니다. 기초를 위한 초등학문과 같은 것입니다.( 3:24).

21세기를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기 나오는 율법의 많은 부분을 따를 경우 무리가 생기게 됩니다.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상황화가 필요하겠죠. 법의 정신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초등학문 또는 기초는 세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다녔을 때 글렌 스태슨 윤리학과 교수님이 해준 말이 기억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이 있었는데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분야의 기초 과목을 들을 필요 없이 상위 과목을 들으면 졸업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그 학생이 여전히 기초 과목을 들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님은 규정의 원리(principle)를 적용해야지 규정을 그대로 율법주의적(legalism)으로 적용하면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논쟁 끝에 그 학생은 기초 과목을 듣지 않고 상위 과목을 곧바로 듣고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법을 해석하는 변호사, 검사, 판사가 있는 것처럼 법은 멈춰져 있는 게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제대로 해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그 원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인에게 태형 40대를 주는 것은 악한 행동에 대해 뉘우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여인을 남편의 형제가 돌보게 하는 것은 자칫 방황할 수 있는 여성을 보호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법 정신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호의 개념이 강합니다. 어떤 주석가는 가족 재산의 보호라는 말도 하더군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질서에 대한 것입니다. 질서는 따라서 억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사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하는 질서입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질서가 아닙니다.

집행자
감독 최진호 (2009 / 한국)
출연 조재현, 윤계상, 박인환, 차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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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집행자로 인해 요즘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데드 맨 워킹이라는 영화에도 이러한 주제가 다뤄지고 있죠.

법은 질서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죄인에게는 적절한 형벌이 내려져야 질서가 잡힙니다. 그 질서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하고 죄를 짓는 죄인에게도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은 오랫동안 감옥에서 살게 됩니다. ‘데드 맨 워킹이라는 영화에서 매튜라는 남자는 두 연인의 데이트 현장에서 강간을 하고 살인까지 한 극악한 사형수입니다. 그는 히틀러의 추종자이고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형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는 사형을 앞두고도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헬렌 수녀는 사형될 때까지 도와줍니다.


데드 맨 워킹
감독 팀 로빈스 (1995 / 미국)
출연 숀 펜, 수잔 서랜든, 조안 글로버, 레노어 뱅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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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헬렌 수녀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손가락질을 했지만 헬렌 수녀는 수모를 감당하고도 매튜를 끝까지 도왔습니다. 질서를 무너뜨린 자였지만 감방에서 강제로라도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자였기에 헬렌 수녀님은 은혜와 자유를 경험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질서에 은혜와 자유가 있으면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지만 은혜와 자유가 없으면 그것은 사망의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디트로히 본회퍼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에버하르트 베트게 (복있는사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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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학자들이 질서를 위해 히틀러의 정치에 토를 달지 못햇을 때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준비했습니다. 이는 히틀러의 새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신자였던 안중근은 왜 암살을 시도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없으면 우리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은혜와 자유가 없는 질서에 대해 문제 제시를 합니다. 질서 위에 은혜와 자유가 있으면 그것은 값진 일입니다. 헬렌 수녀님은 의미있는 일을 한 분입니다.

다시 신명기에 나오는 질서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별히 25장의 질서에 은혜와 자유가 있나 생각해 봅니다. 의인에게 은혜와 자유가 부여되고 악인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고 죄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은혜와 자유가 있습니다. 질서 밖으로 빠져나와 혼란스러울 뻔 했던 남편 잃은 여자에게 은혜와 자유가 주어지며 음낭을 잡혀 성기능을 상실할 수 있는 남자에게 은혜와 자유가 있습니다. 죄를 졌지만 손을 찍힌 여인에게는 은혜와 자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질서는 수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형 제도는 사형수에게는 은혜와 자유를 빼앗는 질서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국외정치인
출생 1889년 4월 20일
신체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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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히틀러나 이토 히로부미의 은혜와 자유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들도 질서 위에서 은혜와 질서를 누려야 하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의 은혜와 자유를 빼앗았던 인물들이었기에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엄청난 파워를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나영이를 괴롭힌 조두순은 그래서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 그는 12년 동안 감옥에서 살고 나온 후 다른 어린이들의 은혜와 자유를 빼앗을 가능성이 큰 사람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잠재적인 피해자입니다. 질서(감옥) 안에서 그도 은혜와 자유를 체험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교화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그를 품을 헬렌 수녀님과 같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에 은혜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의 파워나 영향력이 엄청나다면 예외적으로 그들에게서 은혜와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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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1/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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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서 ,율법, 윤리등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고 그것을 잘해석하고 원리를 잘 이해한다면 조금은 덜 다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사람을 귀히여기고 사랑하며 존중하며 아끼고 살아야 되는지 알기쉽게 분명히 말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 2009/11/09 18: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사람을 귀히 여기시려는 마음, 본받고 싶습니다...


신명기 13장을 읽으면서 잠시 힘들었습니다. 다른 신을 예배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 죽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폐륜아를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잘 보살펴주고 키워줬는데 자식이 얼굴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따른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진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어제 이사온 아저씨입니다. 그 자식이 누군지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를 섬긴다면 친 아버지로서는 그런 자식()을 혼쭐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예화가 생각납니다. 히틀러와 김정일과 같은 폭군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또한 다른 민족을 괴롭히고 그 영향력을 미치게 합니다. 히틀러는 수많은 나라를 지배하며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살인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김정일도 음지에서 군무기 수출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는 북한에서 신(god) 또는 신의 아들입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세상을 지배하려고 할 때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이 나서서 일본 지도자들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히틀러를 살해하려고 신학자 본회퍼는 암살단에 가입합니다.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일제, 히틀러의 독일, 김일성, 김정일의 북한처럼 다른 신을 강제로 섬기게 하고 자신의 백성 및 타 민족을 괴롭게 하면 그들에 대한 살인은 정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내용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신명기는 여기서 단순히 타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파워나 술수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우상숭배를 유도하려는 자들에 대한 살인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준비하면서 미치광이 운전사가 승객을 태우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려고 하거나 행인을 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 운전사를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미치광이 운전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거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못 적용하여 타종교인으로 타겟을 삼는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약 타종교에 미치광이 운전사가 있다면 제거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독기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심판으로 제거할 수 없는 미치광이 파워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신명기 1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는 명령이지만 보편적인 잣대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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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8절부터 10절까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랑. 사랑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편지를 사도 바울은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10).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같았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느낌이 듭니다. 사랑하면 생각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니 더욱 그런 같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않고, 내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나옵니다.

느낌이 어떻습니까? 수동적이죠. 능동적으로 나가서 사랑을 베풀고 그러는 아니라 안에 있는 내면 세계를 돌봄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고든 맥도날드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4년)
상세보기

내면 세계를 돌봐야 사랑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1310절에 나오는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표현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보통 능동적인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대표적인 사랑 같은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사랑보다는 정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같습니다.

물론 사랑이 있어야 정의도 구현할 있겠죠. 그런데 사랑은 내면 세계에서 마음을 돌봐야 생기는 같습니다. 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사랑은 나를 절제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이웃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바울의 말은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사랑과는 조금은 다른 차원인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랑과 정의를 혼합해서 생각했던 같아요. 사랑은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행위로 나오는 아님을 있습니다. 행위는 사랑을 기본으로 정의로운 일을 하고자 할 때 나오는 것입니. 로마서 1310절과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연히도 같은 13장에 있네요.

사랑은 내가 가서 손을 뻗치는 아니라 내면 세계에서 발생하는 죄된 나를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함을 있습니다. 내면 세계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사랑을 없는 같습니다. 내면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묵상 생활입니다. 나를 봐야 내면 세계가 보이는데 조용한 가운데 묵상은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바쁜 가운데에서는 나를 없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르라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엘리자베스 라움 (좋은씨앗,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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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히틀러를 암살하는데 동참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와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뒤집었던 예수님은 이웃에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닌가요? 이런 질문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인데 그들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히틀러는 우리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악을 조장하는 거대한 파워였습니다. 개인이지만 그의 영향력과 존재는 이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악이었습니다. 성전 앞에서 장사를 했던 이들을 놀라게 했던 약간은 폭력적인 예수님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이 썩어 빠져버린 것은 어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악으로 봤기에 예수님은 그런 행동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이웃에게 해를 끼친 것도 무례히 행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을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나 어떤 집단이나 국가에서 악을 조장하는 자들을 간단히 이웃으로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을 배포한다든가, 불법 도박을 조장하는 자들을 단순히 이웃으로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테러를 하자는 것은 아니구요, 그들이 이상 악을 배포(?)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신고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악을 조장하고 있으면 그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례히 행하는 아닙니다. 피해를 끼치는 아닙니다. 이유는 그들은 행위에 대해서는 이웃이라는 칭호를 받을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
출생 1926년 1월 6일
신체
팬카페 김대중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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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현대사에서 역할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게 달러를 엄청나게 갖다준 것은 악을 조장하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일입니다. 그들의 권위와 권세는 인정하되, 잘한 부분은 인식하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고치고자 하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랑을 바탕으로 정의인 같습니다. 사랑을 때는 이웃인지 아니면 이웃차원을 넘어선 악의 중심인지를 필요가 있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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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쟁이
    2009/06/25 07: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무엇인지 감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글로 쉽게 정의 내리는 귀한 은사가 있으네요...감사드립니다.
    • 2009/06/26 00: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감사합니다. 격려의 말씀으로 알고 더 생각하고 쓰겠습니다.


로마서
13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은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잘못 이해하면 오류에 빠질 있습니다. 권세를 가진 히틀러나 김정일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를 보면 히틀러 암살 작전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만약 로마서 131 내용을 잘못 이해한다면 암살 작전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히틀러나 김정일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라면 그것은 따르지 말아야 것입니다.
 

작전명 발키리
감독 브라이언 싱어 (2008 / 독일, 미국)
출연 톰 크루즈, 케네스 브래너, 빌 나이히, 톰 윌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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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34절을 보십시오. 134절에는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은 여러분 사람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권세를 행하는 사람의 정의라고 있습니다. 히틀러나 김정일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일부 권세자들에게만 유익을 인류적으로 또는 특정 인종에게 아니면 자신의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지도자가 아닙니까.

이들 권세에 복종할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권세는 로마의 권력인데 당시 상황에서 지배를 받았던 유대인들은 그래도 로마가 법치국가였음을 인식하고 있었고(해방을 원하긴 했지만) 상황에서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기독교 선교에서 중요한 일임을 사도 바울은 알았던 같습니다.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 국외정치인
출생 1889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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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히틀러나 김정일의 권세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세는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정부는 독재 어쩌구 하는 말이 있어도 여전히 법치국가이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등을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력이라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이구요. 이런 권세 앞에서 조세를 바치고 양심있게 살고 두려워하는 것은 성경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희한하게 김정일을 찬양하고 권세를 인정하고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라고 몰아세우는 세력들이 있는 같습니다. 독재자 중의 독재자, 인민을 배고프게 하는 독자자가 대한민국 땅에서 칭송을 받는 다는 자체가 존경해야 이를 존경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김정일 (金正日) / 국외정치인
출생 1942년 2월 16일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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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 대한민국 정부에 불만이 있을 있고, 비판을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해야 일은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시대를 사는 시민의 몫입니다. 또한 믿는 자의 몫이기도 하구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같아요. 담임 목사님들이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리더가 여러분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인지를 먼저 파악해야하겠습니다.

조금
부분이 있어도 전반적인 뜻이 유익을 주려고 하는 자라면 그의 권세에 복종을 하는 필요합니다. “나에게 유익이 없으니 나는 반대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유익은 모든 사람에 대한 유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반적인 유익을 말합니다.

어떤 목회자가 있는데 하는 일이 온통 자기 유익만 구하고 다른 사람을 헐뜯고 모든 잘못된 일에 발뺌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로마서 131 말씀을 들고 복종을 강요합니다. 아주 위험한 목회자들입니다. 그들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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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3 19: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요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히틀러가 권력을 잡던 시기에 독일의 독실한 복음주의 신앙인들이 "그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는 말을 하며 히틀러를 찬양했다고 하더군요... 독일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섭리는 늘 자기 좋을 대로 오해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죠
    • 밝은터
      2009/06/23 20: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죠...지금도...
  2. 2009/06/23 22: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신앙인들도 로마서 13장의 복종의 개념을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대로 정의를 내려 주신 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 2009/06/24 10: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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