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중에 자살하면 천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만간 그것에 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꿈속을 헤매이는 자들이 많다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도 있고 전혀 교육의 기회를 못 가진 사람들 중에도 이런 자들이 수두룩하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제 손으로 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씨의 죽음은 “사망”이 아니고 “서거”라고 굳이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나라의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노무현 씨의 죽음은 사망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죽어 없어진 것”(사망)이 아니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서거)입니까. 도대체 “갔다”면 어떤 곳으로 갔다고 짐작하는 것입니까.
불교는 극락정토와 지옥 두 곳이 있다 하고 기독교는 천국이 있고 연옥 또는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내세에서 어느 쪽엘 갔을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까. 문화 민족다웁게 좀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어느 종교도 하늘이 주신 목숨을 제 손으로 끊어버린 사람을 극락이나 천국에서 환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자기 목숨이 자기만의 것이 아닌데 마치 자기만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끊어 버린다는 것은 천국에서도 극락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도 이 백성은 그저 한숨으로 지켜보았을 뿐, 그 이상의 대접은 못했습니다. 대학입시에 낙방한 학생들의 자살, 잘 나가던 탤런트들의 자살도 잘못이고,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이나 부산광역시 안상영 사장의 자살도 잘못이라면 노무현 씨의 자살도 잘못아닙니까.
많은 지식인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에 불편해 했습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얕아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예수 천당’과 같은 표현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오직 예수’에 대한 오해를 나눴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예수 천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이를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무시하는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를 체험하셨습니다. 육의 몸으로는 인간이 죄를 질 수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구원을 허락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한 자에게 구원의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인정한 자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을 때 아들이 “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아버지는 재산을 상속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미 아버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뭐가 뒤틀렸는지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 자녀가 된다면 하늘나라를 상속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8장24절을 보면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라고 나옵니다. 뭐냐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 때 우리 마음에 소망이 생기는데 그것이 곧 하늘나라로 가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함축한 게 ‘예수 천당’입니다. 소망을 갖게 되면 죽음의 몸에서 사는 우리가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구원은 이뤄간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구원은 한 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이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진행적인 느낌이 있는 단어이지 단발성 느낌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구원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소망을 품고 가는 게 우리의 몫이라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실 몫입니다. 확실히 딱 정해진 게 없기에 그 소망을 품은 자는 힘들게 살아갑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합니다. 소망을 품은 자는 물질중심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연약한 몸이 있기에 물질을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같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소망 비유
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꿈에 부푼 자가 편히 살다가 메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 선수에게 소망입니다. 소망을 품고 먹고 싶은 것 덜 먹고, 잠 덜 자고, 하고 싶은 것 제한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도 비슷합니다. 그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훈련 과정이 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에게 코치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성령이라는 코치가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하면서도 우리의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성령입니다. 힘들지만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천당’에 함축된 뜻입니다. 천당에 쉽게 가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 자에겐 코치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요.
예수 천당의 진정한 의미
‘예수와 천당’ 사이에는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예수 OOOOOOO천당’이라고 할 수 있죠. 공란을 채워볼까요?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아시고 구원하신 그분을 믿는 것은 믿음의 출발이고 그 믿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코치(성령)와 함께 가는 길에서 그 소망의 종착역은 바로) 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