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3장을 읽으면서 잠시 힘들었습니다. 다른 신을 예배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 죽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폐륜아를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잘 보살펴주고 키워줬는데 자식이 얼굴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따른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진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어제 이사온 아저씨입니다. 그 자식이 누군지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를 섬긴다면 친 아버지로서는 그런 자식()을 혼쭐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예화가 생각납니다. 히틀러와 김정일과 같은 폭군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또한 다른 민족을 괴롭히고 그 영향력을 미치게 합니다. 히틀러는 수많은 나라를 지배하며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살인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김정일도 음지에서 군무기 수출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는 북한에서 신(god) 또는 신의 아들입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세상을 지배하려고 할 때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이 나서서 일본 지도자들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히틀러를 살해하려고 신학자 본회퍼는 암살단에 가입합니다.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일제, 히틀러의 독일, 김일성, 김정일의 북한처럼 다른 신을 강제로 섬기게 하고 자신의 백성 및 타 민족을 괴롭게 하면 그들에 대한 살인은 정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내용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신명기는 여기서 단순히 타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파워나 술수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우상숭배를 유도하려는 자들에 대한 살인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준비하면서 미치광이 운전사가 승객을 태우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려고 하거나 행인을 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 운전사를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미치광이 운전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거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못 적용하여 타종교인으로 타겟을 삼는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약 타종교에 미치광이 운전사가 있다면 제거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독기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심판으로 제거할 수 없는 미치광이 파워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신명기 1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는 명령이지만 보편적인 잣대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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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10

고백과 믿음=구원(?)

로마서 10장에는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당시 사회를 생각해 봅니다. 구원이 간단해 보이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를 고백함으로 체포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함이라는 놀라운 선택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요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이 예수를 부인하면 풀어해주겠다고 했을 때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바로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리 스트로벨 (두란노, 2002년)
상세보기

정보 사회에서의 믿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입으로 고백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고 한들 법적으로 제재받지 않습니다. 후기 산업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삽니다. 정말 원하는 어떤 정보든 얻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보도 널려 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분석된 자료가 인터넷에 풍성합니다.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선택 중에 하나를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나오는 정보에서 발견하는 예수

지식 사회를 거친 우리가 그 정보를 마음 속으로 잡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인류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도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그 정보를 잡은 사람이 바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정보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고, 마음에 너무나 진하게 믿겨지는 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원시 사회나 농경 사회에서는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 사회에서도 전해졌습니다. 제한된 정보이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정보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이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못 들은 이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 믿음이 형성이 될 수 없는 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이자 복음 전도자들이 잘 못 전해서 믿음이 형성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 사회, 산업사회,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정보는 충분합니다. 그 정보를 듣는 자가 잡느냐, 잡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쉬운 것 같은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어령 선생 같은 지식인이 예수 복음을 어떻게 잡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이어령 / 문학평론가
출생 193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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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에 접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신문을 보다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TV를 보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책을 읽다가 정보를 접합니다. 이 수많은 정보에서 예수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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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러다임 시프트를 갈망하는 블로거의 詩

    2009/05/01 10:17
    삭제
    올바른 댓글 문화란 무엇일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4월부터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한 것이다. 과연 올바른 댓글 문화는 무엇일까? 댓글을 왜 다는 것일까? 댓글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가장 문제 있는 댓글은 역시 악플이다. 글 내용과 상관 없이 글 쓴이와 글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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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5/01 08: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 글을 읽는 중에 '놀라운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믿음'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나오리라고 기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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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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