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09/12/01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9)] 영광의 자리에 그가 없다
  2. 2009/11/3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8)] 온 맘을 다해 무엇을 하나
  3. 2009/11/27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7)] 값싼 옷과 비싼 옷걸이
  4. 2009/11/1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6)] 하나님께 십일조, 이웃에게 십일조 (1)
  5. 2009/11/02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3)] 예수 이름을 믿는 자
  6. 2009/10/3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2)] 영화 '집행자'와 신명기 22장
  7. 2009/10/22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0)] 원수를 어떻게 사랑한담? (2)
  8. 2009/10/17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9)] 이에는 이, 눈에는 눈
  9. 2009/10/16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8)] 안내상과 목회자
  10. 2009/10/14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7)] 돌에 맞아 죽었어야 했는데...
  11. 2009/10/12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6)] 자유가 부자유가 된 이유 (2)
  12. 2009/10/06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4)] 십일조와 금지 동물 (1)
  13. 2009/09/30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2)] 법제정의 동기
  14. 2009/09/29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1)] 트라이앵글 오펜스와 계명 (3)
  15. 2009/09/26 드라마 '찬란한 유산'서 말씀 읽기
  16. 2009/09/14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5)] 십계명과 운동 검사표
  17. 2009/09/11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4)] 손전등과 빛
  18. 2009/09/09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 순종하는 배우
  19. 2009/08/02 신명기와 야고보서는 중간계투요원



율법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내렸을 때 제1 목적은 도덕적인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킬 때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에게 그리고 비유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알게 하고 자신이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고 완성시키러 왔다는 말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120세가 되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함을 하나님으로부터 통보받았습니다. 신명기 31장 초반부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걱정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1장에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매주 그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레위인들에게 7년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라고 합니다.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31:9-13)



7일마다 (때로는 더 자주)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대형 교회에서 중형교회에서 소형교회에서 가정교회에서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큐티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기 쉬운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를 잊지 않아야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시상식이 열렸다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그 시상식에 수상 주인공을 초대해서 가운데 무대에 세워줘야 그가 수상자로 인식이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상식장 주변에서 서성 거리는 배우가 되겠죠. 그 배우는 이름이 불려져야 가운데 무대로 올라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계십니다. 그럴 이유가 하등에도 없는데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드려야 그가 무대 가운데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나님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로 영광스럽지만 하나님은 자녀로부터 영광됨을 칭송받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에게서 아빠는 최고야! 엄마는 최고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고입니다. 온갖 기적을 보이시고 배고플 때는 양식을 베푸시고 적들이 있을 때는 먼저 가셔서 그 적들을 해결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칭송은커녕 인식도 못하고 삽니다. 뛰어난 배우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그 배우가 누구더라?”라고 질문하는 자들처럼 삽니다. 배우가 눈앞에 있는데 뉘시더라?”라고 하면 그 배우가 얼마나 민망스럽겠습니까. 배우는 숨고 싶겠죠. 하나님도 백성이 인식하지 못하면 숨으십니다. 신명기 3116절 이하에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숨지 않으시도록 오늘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찬송해야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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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9장과 30장을 읽어보면 신명기 전체에서 흐르는 주제인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최근 제 두 자녀와 신명기 30장에 대해 나눔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네 온 마음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물어보았습니다. 역시 재미나게 노는 것이었고, 그 중에 비디오 게임이 있었습니다. 공놀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한다고 했습니다.

Nico
Nico by Ian Muttoo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이고자 하는 것은 나를 좀 봐라!” “나에게 순종 좀 해라!” “내가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입니다.

우리가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 정도로 정성을 다해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 월드컵이 시작하면 온 나라가 그 경기에 집중합니다. 밤 잠을 설치고 경기를 봅니다. 온 맘을 다해 한국을 응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을 해봅니다.

Goal!
Goal! by gabrielson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꼬박꼬박 일은 하고 TV도 보고 다른 일은 열심을 다하는 데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더 알려는 노력은 뒷전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 남는 시간과 푼돈을 받는 분으로 착각을 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역시 그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 없이 머리의 노력만으로는 그를 순종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 294절을 보면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남은 단순히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의 섭리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를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네이버 뉴스 카데고리 ..
현재 네이버 뉴스 카데고리 .. by Seokzzang Yu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포털 사이트에는 매순간 검색어 순위가 공개됩니다. 검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인물에 대한 관심입니다. 관심을 가져야 그 인물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너무 좋으면 만나러 가려고 하겠죠. 골수팬이면 팬클럽에도 가입하겠죠.

하나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먼저, 궁금함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어떤 분인지 알아봐야 하고, 그를 만나고자 노력을 해야 하고, 그가 만나주기를 바라는 게 필요합니다.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임(교회 등)에 가입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왜 창조주는 인간과 계속 관계를 맺고 가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부모의 마음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자녀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때 더욱 기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는 뛰어난 자녀를 원하는 게 아니라 순종하고 사랑하는 자녀를 원합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부모는 기쁨을 누립니다. 부모가 기쁘면 자녀도 기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삶을 부모와 자식간의 삶에서 철저하게 경험하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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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itted star dress design | fashion portrait by Adam Foster | Codefo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유대인이 구약을 읽는 경우와 21세기를 사는 크리스천이 구약을 읽을 때는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기 때문에 구약을 여전히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과 저주의 글은 유대인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한 설교 내용은 문자 그대로 그들에게 와닿기 떄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약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해서 하나님의 온갖 기적을 지켜봤고 또 하나님이 흩어놓아서 전 세계로 흩어진 민족이기에 구약의 말씀이 그대로 역사 속에서 실행에 옮겨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경이지만 그들은 신명기 28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다른 관점으로 읽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믿기 때문에 신명기 28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같은 성경이지만 유대인은 문자 그대로 볼 수 있고 크리스천은 상징적으로 은유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뜻으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다이내믹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서도 읽는 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서 움직인다는 게 그런 말입니다.

하지만 공통된 해석은 있습니다. 바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다른 신을 섬길 때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성경에 나오는 그 하나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하나님을 만든 것은 아닌지.

하나님은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과 관심과 구원에 대한 증표로 예수의 몸으로 직접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도록 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과 관심과 구원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고 희미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우주의 창조자이신 그 하나님인가 긴가민가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해줍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세상의 구원자이고 사랑의 화신임을 명확하게 보이셨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다시 하나님을 찾아나서서 긴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그분을 만나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지나면 긴가민가하는 상황이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유대인들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믿다가도 나중에는 긴가민가해서 다른 신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합니다.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 하나님의 계명도 무시하는 게 당연합니다.

모세는 따라서 신명기 27장과 28장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이러한 저주를 받는다고 강조해서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꼭 맞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신화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티모시 프릭 (미지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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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사는 크리스천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에 대한 온갖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그를 믿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예수가 신화이고 예수는 성경에 나오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연구서가 나오는 이유는 왜 일까요? 그만큼 예수의 존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이슬람도 그렇고 다른 종교도 예수의 신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종교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예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이를 인내하고 지켜보심을 예수를 통해 보이셨습니다. 유대인은 신명기 27장과 28장을 문자 그대로 믿기에 계명을 지키는 민족이 되었고, 이슬람도 비슷합니다. 이들이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노력으로 하나님께 이르는 게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없다고 하면 신명기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계명을 지키고 자신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예수 없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익숙한 상황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신명기 27장과 28장을 볼 때는 그가 이런 징계를 내리는 분이지만 예수를 통해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해주셨음을, 그의 무한한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2847절에 나오는 표현처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움으로 그를 섬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예수입니다.

THE OLD MILL RUN -- A Boys Day of Adventure in Old Japan
THE OLD MILL RUN -- A Boys Day of Adventure in Old Japan by Okinawa Sob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참 쉽죠 잉~”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수는 바로 하나님이 쉽게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보내신 선교사입니다. 복음은 복잡하고 계명을 지키고 선한 자가 되는 게 아니라 선한 존재를 향해 그를 인정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하나님을 정확히 보게 했습니다.

쉽게 받은 것이기에 함부로 다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쉽다는 것, 그것이 쉽게 보여도 쉽지는 않습니다. 나의 노력만으로 쉽게 믿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너무 쉽고 싸게 보이면 붙잡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옷을 살 때 왠지 싸게 보이고 구입하기 쉽게 보이면 귀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패션을 생각할 때 비싸면 왠지 대단해 보이고 좋아보입니다. 싼 가격으로 옷이나 장신구를 구입해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지혜입니다.

예수의 은혜가 마치 값싼 은혜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너무 쉽게 하나님을 보고 별 노력 없이 구원을 얻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제공한 이는 쉽게 받으라고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너무 복잡하게 받아들이니까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싼 옷을 비싼 옷처럼 입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값싼 은혜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고급스러운 은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정말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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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노승환) / 국내가수
출생 1972년 10월 10일
신체 키180cm, 체중70kg
팬카페 힙합뮤지sean을위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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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이 신명기 26장에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 26장에도 나타납니다.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레위인, 외국인, 고아, 미망인에게 수입의 일정량을 나누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십일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사실 신약과 구약에는 이웃에게 소득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나옵니다. 이웃에게 나누자고 하면 공산주의라고 폄하하며 싫어합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쳤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텐데 요즘 한국이든 미국이든 소득을 이웃과 나누자고 하면 좋아하는 기독교 리더가 많지 않습니다.

말로는 나누자고 하지만 실제 그러한 법안이 상정되거나 시스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려고 하면 공산주의라고 싫어합니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이 없는 분들이 소득을 나누자는 것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일부분만 너무 강조한 탓입니다. 대형교회의 경우 점점 부자가 되어 가는데 이웃에 대한 씀씀이는 박한 게 사실입니다. 헌금 대부분이 교회 시스템 유지에 사용되는 게 현실입니다.

하나님께는 돈과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게 자연스러운데 이웃에게는 선뜻 그렇게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정혜영 / 탤런트
출생 1973년 12월 14일
신체
팬카페 정혜영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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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 국내가수
출생 1967년 8월 14일
신체 키186cm, 체중7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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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들어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힙합 그룹 지누션의 멤버인 션과 그의 아내인 정혜영 씨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CF 출연료 1억을 선뜻 내놓고 가수 김장훈 씨도 자신의 재산을 고아원에 끊임없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니 세상도 박수를 보냅니다. ‘개독교라는 말이 쑥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실천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돈으로 시간으로 십일조를 하게 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십일조도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션, 정혜영 부부, 김장훈 씨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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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느낌님의 믹시

    2009/11/10 18:25
    삭제
    오늘 티비에 션부부가 나오더군요. 그런 이웃 사랑은 자기 부인 사랑으로부터 했다는 데서 더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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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밝은터
    2009/11/10 21: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참 본 받고 싶은 부부입니다. 감사합니다.

Good Friday
Good Friday by {the twinkling of an eye} 저작자 표시비영리

구약성서 신명기에 나타난 주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주제를 안 상태에서 읽으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 책인지 모릅니다. 이 책을 율법책으로 읽으면 이렇게 힘든 책도 없습니다.

신명기 23장은 전체 주제를 나타내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다른 신을 동원해서 저주하는 민족이 나옵니다. 암몬족속과 모압족속입니다. 다른 신을 동원해서 저주하는 정도면 그 민족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민족과 함께 지내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전염이 되어 하나님께 등돌리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그런 민족은 사전에 사귐을 허락하지 않는 내용이 23장에 나옵니다. 발람을 동원해서 저주하는 민족은 10세대가 지나도 하나님의 공회(assembly)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그러한 악한 족속들과 전쟁을 한다면 병사는 몸과 마음의 깨끗함을 유지해야 함을 23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제 전쟁 상황에서도 그렇고 영적 전쟁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주 앞에서 불결함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 중에는 굉장히 중요한 축구 경기를 앞두고는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축구 경기를 관전하고 응원한다고 합니다. 축구를 단순히 축구로 보는 게 아니라 전쟁과 같이 보는 것입니다.

주 앞에 나갈 때는 정결해야 하는데 이는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요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신명기 23장은 주고 있습니다. 어떤 노예가 주인을 피해 도망을 오면 함께 거주하면서 그 노예를 압제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으며,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말고, 타국인에게는 돈을 빌려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국인에게는 이자는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도 타국인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사람에게는 신명기 당시의 상황과 조금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지 벌써 2천년이 지난 상황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은 좀 더 성숙하고 넓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좀 더 넓게 세상을 품으십니다. 인간이 품을 수 없었던 존재들마저 예수님은 품으십니다. 모세가 신명기 23장에서 설교한 내용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연약함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가 있기에 좀 더 넓게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이름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악한 세력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에서 배제되었던 고환이 상한 자, 음경이 잘린 자, 암몬족속, 모압 족속, 밤에 몽설(몽정)하는 병사, 에돔 사람, 이집트 사람, 창녀, 남창 등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로 모두 씻음을 받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었다면 이들을 도저히 이겨낼 힘이 없었던 사람은 이제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그런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는 악한 영과의 전쟁을 벌일 때 예수의 이름(in the name of Jesus)”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예수의 이름에 능력을 얻는 게 아닙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 그러한 능력이 생깁니다.

마음속에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생각하면 예수의 이름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말 미국은 할로윈 행사가 있었습니다. 할로윈 행사가 열릴 때 악한 영의 역사가 강력하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발람을 동원하는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의 풍습을 따르는 듯합니다. 구약식으로 하면 이러한 행사에는 절대 참여하지 말고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예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보혈이 있습니다. 믿는 자는 그 어느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자,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게 바로 그 뜻입니다. 사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지라도 보호되는 자들이 예수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예수를 믿는지 정말로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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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감독 최진호 (2009 / 한국)
출연 윤계상, 조재현, 박인환, 이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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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 봐야 할 것이 있고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분별력이고 그 분별력은 성령께서 갖도록 하십니다.

신명기 22장은 혼외의 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벌을 내리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결혼 전에 남녀가 육적인 사랑을 나눴을 경우에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22장에 따르면 순결한 상태에서 결혼하지 않을 경우 돌에 맞아야 합니다. 결혼 생활 안에서의 섹스가 아니면 대체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이 신명기 22장입니다.

이 율법대로 한다면 21세기를 사는 사람 중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들키지 않을 경우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들켰을 경우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처녀가 아닌 여자에 대해 남자가 처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약혼한 남자와 동침하면 남자와 여자 모두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유부녀와 동침하면 역시 둘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강간을 한 남자는 죽어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결혼의 신성성인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이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섹스는 가하되 모든 게 유익하지 않고 오직 결혼 생활 안에서의 섹스만 귀중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21세기 상황에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사역했을 때도 결혼 생활 밖에서의 섹스가 우상숭배의 문제로까지 연결됐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생활이 문란한 여자를 사람들이 돌려치려하자 네가 죄가 없으면 그렇게 해보라고 했고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 않고 물러섰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이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며 보내줬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면 회개할 기회가 없고 새 삶을 살 기회를 잃게 됩니다. 윤계상, 조재현 씨가 출연하는 영화 집행자 2009 115일에 개봉된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 시사회를 본 블로거들의 글을 보면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았다고 합니다.

흉악한 범죄자였지만 20년 동안 교도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좋은 사람이 됐는데 사형을 당하는 상황에 그들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는 반드시 주어져야 합니다. 흉악한 살인마가 무기징역을 받았어도 그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신명기 22장을 문자 그대로 보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수 복음은 그런게 아닙니다. 따라서 22장을 문자 그대로 보지 않고 뜻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뜻은 결혼 생활의 신성함입니다. 결혼 생활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과의 결합(결혼)이 깨지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결합을 깨는 성적 문란의 분위기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적 문란을 바울은 경고했던 것입니다.

신명기의 저자로 여겨지는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결합을 깼던(우상을 숭배했던) 민족이기에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하나님과의 결합을 깨지 말 것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것을 깨는 것은 나쁜 일이기에 돌을 던져 죽일 정도로 심각하게 다뤘던 것입니다.

결국 결혼 생활을 깨지 말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깨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큼은 깨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시고 신뢰 회복을 위해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The Inner Workings Of A Groom's Mind
The Inner Workings Of A Groom's Mind by Ioannis P. Skaltsa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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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19-A-1797M-034 by US Army Korea - IM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리가 보통 원수(enemy)’라고 말하면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원수는 나와의 관계에서 뭔가 맞지 않아 원수가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객관적인 원수가 아닐지라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수에 대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원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이런 원수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구약의 하나님도 반드시 쳐서 없앨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 무리를 쫓아내는 장면이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0장에 이러한 원수에 대한 지침을 내립니다. 전쟁을 하도록 합니다.

신명기 20장에 두 종류의 원수가 모두 나옵니다. 203절에 나오는 원수는 첫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원수와 싸움을 할지라도 평화를 위해 중재의 제안을 할 것을 설교자 모세는 명령합니다. 2014절에는 원수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바로 두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민족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 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종류의 원수가 되면 우리는 제 명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종류의 원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도록 선택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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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me lebanner pre-fight by tdub303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K1이 요즘 인기를 끄는데 K1에서 상대는 일단 적(enemy)이고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규정 안에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규정 밖의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적에게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승리 후에는 적에게 격려하고 적와 악수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싸우느라 수고한 적에게 격려를 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카에다는 서방 세계의 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들의 폭탄 테러, 자폭 테러는 반드시 막아야하고 그들에게 대적해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신명기 20장 초반에 나오는 표현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들은 이겨야할 원수인 동시엔 땅을 얻으면 안 되는 원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왜곡하여 세상에 전하기 때문입니다. ‘성스러운 전쟁을 외치며 그들은 오늘도 테러를 자행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이것은 왜곡된 신이고 결론적으로 다른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 강호순, 잔인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어떤 원수일까요. 그들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원수입니다. 사회의 적입니다. 그들은 또한 사탄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적입니다. 사회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민족이나 집단이 아니고 개인이기에 격리 수용되어 사랑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격리됨은 두 종류의 원수 짓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도소 수용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 이 원수들을 사랑하는 간접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억울하게 잡혀 들어간 사람을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교도소의 재정이 궁핍하다고 이들을 조기 출소시킨다든가 이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다시 준다면 이는 결국에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됩니다.

사랑은 하고 싶은대로 아무렇게 하게 내버려두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운전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둘째 아이가 자동차 뒷쪽의 창문을 갑자기 열며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해 문을 닫으라고 했고 창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도록 잠금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는 둘째 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둘째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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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eria HDR by Davic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교도소도 그런 개념일 것 같습니다. 교도소 밖으로 나오면 많은 사람을 너무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러는 중에 착한 심성을 갖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원수를 밟아 이긴다는 말은 그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는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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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0/23 08: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끔 원수때문에 헷갈립니다.
    어디까지가 사랑인지 그렇다면 사탄이 하는 일은...명확한 글, 감사합니다.
    • 2009/10/23 11: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주님.

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몰리 해스켈 (나남,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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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월에 이슈가 된 나영이 사건 또는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한국에 아직도 정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영이(가명)를 그렇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하고 내장이 몸밖으로 나오게 할 정도로 너무나 잔인하게 어린 아이를 다룬 것에 대해 술취한 상태였던 것을 참작해 12년 형이 내려진 것은 정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조두순이라는 사람은 이전에도 강간으로 잡혀들어간 적이 있기에 이번 형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한국의 법체계에 정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신명기 19장은 이러한 살인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신명기 19 21. 극악한 살인자에게는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는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집행할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라 재판관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재판관이 살인자에 대해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판결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이를 잘못 해석해 일반인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면 곤란해집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9.11이 터진 후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읖조렸는데 잘못된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재판관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 사회 판결 기관(UN과 같은)에서의 판단이 필요했는데 마치 미국이 세계 불의의 재판관인 것처럼 착각하고 이라크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9.11 사태의 피해자들에게는 그 공격이 정당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다시 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해냈습니다. 해석이 잘못되었고 출발도 잘못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와 판결 기관의 동의 없이 공격을 시작했기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반미감정이 솟아 올랐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무시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세계 질서에도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는 그래서 개독교는 없어져야 한다!”고 극한 주장을 펼칠 것입니다. 그러한 극한 주장, 무논리의 주장을 하는 분이 아니라면 성경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UN군이 한국으로 진입했을 때 이것은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지원군이었습니다. 그것은 국제 사회 판결 기관의 동의하에 일어났던 전쟁이었습니다.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신명기 1921절의 내용이 적절합니다.

한 개인의 잘못된 것을 정죄하는 재판 기관이 필요한 것처럼 국제사회에서도 그러한 기관이 있고 이 기관의 동의에 따라 잘못된 나라를 정죄하고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판하는 기관이 정의를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혼란이 일게 됩니다. 조두순 사건은 재판 기관이 법해석을 잘못했든지, 법이 잘못 제정되어 있는지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법을 바꾸든지 법해석을 다시 하는지 해야 할 것입니다.

법해석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겠죠. 그런데 이 사건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게 판결이 났습니다. 조두순은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명언이 적용될 수 없는 극악한 사람입니다. 악한 영이 그를 인도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카에도 극악한 사람들의 집단이죠. 그런 집단에 사형선고를 내릴 곳은 미국이 아니라 UN과 같은 기관입니다. 국제 사회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by BL1961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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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ion
Compassion by sniderscio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신명기 16장 하반절부터 신명기 18장까지 이스라엘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을 모세가 설교하고 있습니다. 리더라함은 재판장, 공직자, , 제사장(레위인), 선지자 등이었습니다. 특별히 신명기 18장에 나오는 제사장(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설교 내용을 읽어보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을 먹을 수 있지만 땅의 유산은 상속 받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즉 먹고 사는 일은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유산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진행을 맡은 레위인들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생겼고 구약의 역사를 통해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자도 생겼으며 인간에는 관심이 없는 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두는 자가 아님은 예수님의 예화에 분명히 나옵니다.

그의 예화에는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자를 레위인이 그냥 보고 지나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레위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돌려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결국 당시 천시되던 사마리아인이 그 행인을 돕게 된다는 예화입니다.

레위인은 백성의 십의 일조를 생활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면 목회자들은 그것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형 교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목회자가 교인들의 십일조로는 기초 생활도 못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목회자들의 연봉이 꽤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것은 헌금 액수가 높은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내상 (안태건) / 국내배우
출생 1964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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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내상 씨는 최근 모 프로그램에 출연, 목사보다 배우가 돈을 더 잘 벌 것 같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연세대 신학과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농담으로 던졌던 말은 사실 맞는 말입니다. 목사가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전체 목회자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들이 목회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며 기독교를 욕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모르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들의 양무리들을 돌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분들이 안티 기독 운동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소위 잘 나가는 목회자들은 공격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운동은 오히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안티 기독 운동을 하는 분들은 기독교를 이 사회에서 몰아내 깨끗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부질 없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운동은 오히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분들을 찾아가 돕고 있는 목회자와 그의 양떼들을 힘들게 해 그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인데 기독교를 엄청나게 욕해 놓으니까 나쁜 이미지를 벗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어도 여전히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마저 도매금으로 함께 빈대로 여겨진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십일조를 받아 자신의 배만 불리는 목회자도 있지만 기초 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도 있음을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초 생활을 하는 것 이상으로 부를 쌓는 목회자들도 신명기 18장을 보면서 회개를 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의 유산은 오직 주님과 그의 나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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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drops - S5isMacroDrops_1
Raindrops - S5isMacroDrops_1 by Daniel Y. Go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신명기 17장을 잘못 해석할 경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모세는 17장에서 달, 태양 등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는 증인 두세 사람이 있을 경우 돌로 쳐서 죽여도 된다고 했습니다.

무속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여전히 달, 태양신을 섬깁니다. 지금도 그런 분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그들을 돌려 쳐서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174절에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이스라엘 안에서 발생하면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나 자주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는 정말 배은망덕한 일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확실한 민족이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죄인이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죽은 것입니다. 정작 죽어야 할 자는 우리인데 그가 대신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죄를 짓습니다. 실수는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도 이제 지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00년 동안 얼마나 인내하시고 기다리셨습니까.

그래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가 목숨이 끊길 떄까지 기다리십니다. 그의 품에 돌아오기를

인간은 잘 지내다가도 욕 한 번 하면 등을 돌립니다. 저와 아주 친한 사람이 있는데 제가 그 사람에 대해 뒷담화했다든가 앞에서 욕을 했다면 그 사람과 저는 원수가 됩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우리는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얼마나 불순종합니까. 얼마나 무시합니까. 은근히 하나님을 동냥하는 분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모든 수모에도 그는 우리를 기다린다는 게 기적인 것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때 가상의 총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거나 사물을 파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게임이니까 우리는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창조주가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주를 만드신 이가 작은 행성의 아주 작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대신 총에 맞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게임 안으로 들어가서 대신 총에 맞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인 것입니다.

저는 어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 잠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은혜를 그렇게 체험했으면서도 육의 일이 지배하니까 영의 안식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런 저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을 보내시어 저를 안위하십니다.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한 나를 하나님은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는 은혜가 감사하면서도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달라고 구하기가 죄송할 때가 있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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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자
감독 스티브 히크너, 브렌다 챕먼, 사이몬 웰스 (1998 / 미국)
출연 산드라 블록, 랄프 파인즈, 대니 글로버, 미셸 파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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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6장에 나오는 아빕월은 우리로 말하자면 1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모세와 그의 무리에게는 아빕월이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이 아빕월에 이집트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아빕월에는 유월절이 있죠. 영화 이집트의 왕자에도 나오지만 아빕월의 14일인 유월절에 이스라엘 민족은 재앙에서 벗어났습니다. 또한 유월절에 이집트를 빠져 나왔고 예수님도 유월절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했고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유월절은 항상 두 가지가 함께 합니다. 고통에 이은 자유가 함께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은 고통이었지만 이집트를 나온 것은 자유였습니다. 또한 노예 생활 중에 하나님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고통 중의 자유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그것에 따른 자유도 유월절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란 단어는 영어로 Passover인데 말뜻은 빗겨나간다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지만 결국에는 재앙의 타겟에서 빗겨나가 축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결국엔 자유의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일, 하나님께 바치는 일 등은 이스라엘 민족을 얽매이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유의 메시지를 계속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고자 했던 자유의 메시지를 매번 상기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물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16:15) 예물을 바치면서 자유를 기억하게 하고 그들의 수고를 축복하기 위한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611절에 보면 노예, 고아, 이방인, 남편을 잃은 자들과 함께 축하하며 기뻐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설교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소외된 자들인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도 자유를 얻게 하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묶인 자를 풀어주려는 하나님의 시도인 것입니다.

유월절 페스티발을 하면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는 엄청나게 힘든 행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배를 하며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예배는 그저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헌금을 하면서 부담이 되면 이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자유입니다. “너희는 내 안에서 자유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예수를 통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을 묶어두려는 게 아니라 자유와 축복을 주려는 것이었고, 다윗의 회개에 이은 하나님의 축복은 죄에서 자유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통해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고 했고 사도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임에도 그 예수 안에서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자유하면 방종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말하는 게 불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계속 자유의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신명기는 자유의 메시지입니다. 구약과 신약 전체는 결국엔 주 안에서 자유입니다. 이걸 보지 못하면 복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도대체 뭐가 복음인가? 뭐가 온 인류를 위한 복된 소식인가? 그런 질문을 던져본 후에 자유를 생각해 보면 자유의 값진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래 내용은 미주 중앙일보 2009년 10월7일 종교8면에 소개된 밝은터의 칼럼입니다. 자유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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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0/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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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적인 자유,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 bkp
    2009/10/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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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그 자유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육적인 묶임이 내적인 자유를 지배하는 날이었습니다.




금지된 동물(돼지 포함)을 먹으면 안 된다.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신명기 14장에 나옵니다. 이런 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입지나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는 홀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하길 원합니다.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은 특별히 그들을 훈련하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어떤 구약학자는 이 성경 말씀에 근거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내리고 이런저런 계명을 주는 것은 훈련을 위한 것입니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이런저런 제약을 받습니다. 먹는 것, 자는 것, 훈련하는 것 등을 코칭스태프가 짜준 계획대로 따라야 합니다.

선수촌에 들어가면 선수들은 평소에 먹었던 것을 못 먹게 됩니다. 선수촌에 나오면 먹을 수 있겠죠. 대회가 끝나면 원하는 것을 먹습니다.

14장에 나오는 십일조도 같은 개념인 것 같습니다. 내가 번 것을 혼자 다 갖는 것보다 나누는 훈련을 하나님은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십일조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신데 십일조가 왜 필요하시겠습니까.  그의 백성에게 나눔을 훈련토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훈련 계획을 짜셨는데 이를 거부하면 불순종인 것입니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선수가 코치진이 만든 훈련 계획을 거부하면 훈련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 훈련이 코치를 위한 훈련은 분명히 아닙니다. 선수를 위한 훈련입니다. 선수가 최고의 경지에 오르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금지된 동물과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기 위한 훈련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십일조라는 정형화된 헌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십의 일을 의미합니다. 십의 일은 10%입니다. 민족에 따라 5%가 될 수 있고 사람에 따라 20%, 30%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면 기독교인으로서 할 일을 다했다는 분위기를 심는 것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를 도저히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괴감이, 둘째 십일조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겐 자만감과 함께 안도의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90%를 헌금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인데 10%에 만족합니다.로널드 사이더라는 풀뿌리 운동가이자 목사는 누진 헌금이라고 해서 수입이 높을수록 많은 헌금을 내고 거액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최고 90%까지 헌금을 하도록 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헌금은 전 세계 가난한 자들과 나누자는 것입니다.

사이더의 운동은 학계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교회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릭 워렌 목사와 같은 이가 사이더의 영향을 받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십일조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맞는 훈련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상황에서 그 숫자가 훈련하기에 좋다고 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십일조를 갖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신명기 14장 끝 부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만 강조하고 그 쓰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가 십일조와 헌금을 갖고 교회 시스템 유지에 주로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게으른 것 같습니다.

성경의 필요한 부분만 갖다가 교회 시스템 유지를 하려고 하고 정작 교회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이 시대의 기독교가 각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각성의 분위기가 일고 있어 그나마 감사한 일이지만 여전히 기존의 시스템의 높은 벽으로 인해 개혁이 이뤄지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교회에 대한 불신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교회에 조소를 보내는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교회가 많이 나타나면 세상도 비웃지 못할 것입니다. 감자탕 교회와 같은 교회가 한국 교회의 대세가 되게 하소서.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서 저장하여 두었다가,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들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신명기 14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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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0/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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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시원해 집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Barack Obama at Las Vegas Presidential Forum
Barack Obama at Las Vegas Presidential Forum by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Action Fund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신명기 10:13, 11:8, 11:19-21, 12:28을 보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계명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지킵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지금도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계명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의무와 마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는 않습니다
. 이는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명을 주실 때의 부모의 마음을 자식이 알고 감사하게 이를 따르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는 마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반응은 크게 다릅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의 마음을 보고 기뻐하시고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계명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다른 종교나 도덕법으로 지켜졌습니다. 열심히 지킨 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한 게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를 알고 섬긴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온인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뜻을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민족은 특별히 더 사랑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법제정을 해야 하는데 그의 의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말로 가난하고 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법제도인지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이어가기 위한 제도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전자이면 당연히 그의 개혁 시도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고 후자이면 반대해야 합니다. 전자이면 사랑에서 나온 것이고 후자이면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계명을 만들었다면 이는 너무 많은 사람을 얽매이게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을 위해 계명을 만들었다면 이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니까 순종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로 하는 순종은 남는 게 인간의 영광이지만 사랑으로 하는 순종은 남는 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과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명을 주셨다는 점입니다.

계명을 만든 이가, 법을 제정한 이가 어떠한 의도로 규례를 적용하려고 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의 순종을 하는지, 의무적인 순종을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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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ordan (1998)
Michael Jordan (1998)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마이클 조던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혼자 득점을 독차지하다보니 팀 플레이가 되지 않아 승리로 이끌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7년 동안 그는 무관의 제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필 잭슨 감독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들고 나옵니다. 새로운 공격 룰을 만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선수가 균등하게 공격 기회를 얻는 공격방법이었습니다. 잭슨 감독은 그렇지만 조던을 제한시키는 것은 아니다. 조던은 이 공격 방식으로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던은 처음에는 이 공격 방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맘대로 공격해서 많은 점수를 내야 시카고 불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가 이 공격 방식을 믿기 시작하자 불스는 달라졌습니다. 1인 군단이었던 불스는 5인 군단, 12인 군단이 됐습니다. 불스는 마침내 1991 NBA 챔피언이 됩니다. 잭슨이 들고 온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조던을 힘들게 하는 규칙이 아니라 그에게 챔피언 반지를 가져다 준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틀이 싫었는데 맞추다보니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틀이 조던에게 유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틀도 마찬가지입니다. 틀은 율법이겠죠. 처음에는 좀 불편한 것 같고 힘듭니다. 그러나 그 틀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면 감사하게 됩니다. 틀이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죠. 그리고 무너지겠죠. 조던이 그랬던 것처럼.

조던은 그러나 우승을 한 이후에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벗어난 플레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틀 안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도 했던 것이죠.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도 우리가 유연성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 틀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유연한 태도로 받아들여할 것 같습니다.

신명기 11장에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계명을 자손에게도 알려서 교육하라고 합니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자체가 내 영적 우월성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계명은 안 지킴만 못합니다. 계명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계명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든 안 지키든 여전히 창조주이시고 우주질서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우리에게 유익이 생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규칙을 줬더니 자녀가 잘 지키면 부모로서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데 자녀가 너무 규칙에 얽매이는 것 같으면 부모로서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규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부모는 기뻐할 것입니다.

댈러스 매버릭스라는 구단은 과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공격 방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공격 방식으로 매버릭스가 승리하는 게 중요했는데 지나치게 공격 방식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 공격 방식은 댈러스에서는 폐기처분됐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오히려 인간의 창의적 삶을 가로막게 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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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그나
    2009/09/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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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유연성, 창의적인 생각, 나를 위하신 계명.
  2. 박영재
    2010/07/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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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읽었습니다^^ ㅎㅎ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밝은터
      2010/07/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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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농구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위 내용은 미주 중앙일보 2009년 9월24일자 종교면에 실렸습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좀 더 큰 크기의 글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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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h-ups time at the Patterson house....
Push-ups time at the Patterson house.... by patterb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큰아이(5학년)가 학교에서 체력검사를 한다고 해서 매일 밤 5-6가지 운동을 돕고 있습니다. 윗몸일으키기, 팔굽혀 펴기 등등의 운동인데 처음에는 되는 대로 했습니다. “어제 몇 개 했지?” 그게 매일 밤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물으며 주먹구구식으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운동 검사표를 아이에게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 검사표 예제파일]





그리고 매일 이 표를 작성해 나갔습니다
. 틀이 잡혀갔고 가끔 제가 못 도와주면 아내가 대신 도와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표를 만들어줬기에 아이는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핵심포인트는 무엇일까요?

틀이나 표가 아니라 아빠의 관심, 아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십계명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싶습니다. 십계명 자체에 신비로움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 인간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십계명에 녹아 들어있다는 게 신비로운 것입니다. 십계명은 이미 대부분 국가의 법으로도 제정돼 신비로움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도덕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됐습니다.

십계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십계명을 지키지 않은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윗은 대표주자이고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기독교인 살인을 당연시했습니다. 솔로몬왕은 어땠습니까? 그들에게 십계명이 진정으로 있었는지 의문시 됩니다. 

기독교 지도자 중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고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은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전쟁 중에 죽였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십계명을 어긴 사건들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자주 나타났습니다. 특히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 의해 자행된 십계명을 어긴 사건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십계명을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계명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계명 자체보다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상징적으로 나타나기에 계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말고 진짜로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명이 거룩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거룩한 것입니다.

제가 아들에게 만들어준 운동 검사표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아들이 건강하게 되고 체력검사에서 통과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아들이 운동 검사표를 찢거나 함부로 여긴다면 그것도 안 되는 것이겠죠.

그 안에는 아빠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 검사표를 열심히 작성하며 운동하면 아빠는 기쁘겠죠.

표에는 십계명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운동 검사표 자체에 너무 집착하면 아빠의 뜻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운동 검사표를 보며 아이가 아빠의 마음을 알면 좋겠습니다. 신명기 5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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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네 번째 시간입니다.


백 투 더 퓨쳐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1985 / 미국)
출연 마이클 J.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크리스핀 글로버
상세보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분은 교회에나 사회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킴으로써 약속된 땅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며 공부함으로써 약속된 땅을 향한 방향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지금 약속된 땅을 향하는 길에서 내비게이터(GPS) 망가진 상태입니다. GPS 바로 하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그들은 하나님을 없게 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후세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에게서 비슷한 것을 더욱 자주 보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것이 내비게이터를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있는 타임머신 비슷한 것을 허락하셨는데 바로 예수입니다.

영화 백투더퓨처 보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주인공들이 다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비게이터를 따라갔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이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있도록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 선물을 하신 것이죠.

예수가 없다면 이스라엘 민족처럼 외지에서 40 동안 방랑하게 됩니다. 인간이 40 동안 방랑하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당연한 같습니다.

하나님은 해결방법을 내놓으셨는데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율법이 빛을 비추는 손전등이었다면 예수님은 자체입니다. 자체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의 모든 땅에 빛이 비쳤지만 빛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기독교인이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빛이 비친 곳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굳어져서 빛을 피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손전등을 무시했던 상황과 별반 다를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빛은 마틴 루터 주니어, 간디, 테레사 수녀,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비쳤습니다. 그들은 빛의 힘으로 세상을 밝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빛을 피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강력하게 비추고 있어도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립니다. 제발 나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2009/09/09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 승패를 초월하는 길
2009/09/10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 순종하는 배우
2009/09/11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영화 '해운대' 대피령 왜 못 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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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by Iguana Jo 저작자 표시비영리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신명기 1장부터 440절까지는 역사의 회고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불만만 터뜨린 것에 대한 결과가 소개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순종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대본에는 결국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배우가 반발하는 바람에 늦춰진 것을 보게 됩니다. 배우가 대본 내용에 불만을 품고 연기를 하지 않으면 영화는 제작될 없습니다. 소위 말해 엎어지기도 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지 않으면서 엑소더스라는 영화가 엎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주어집니다. ‘엑소더스제작자인 하나님은 마치 이경규 씨가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엑소더스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습니다. 40 이상 걸렸습니다.

배우는 제작자의 기획에 따라야 합니다. 물론 작은 부분에서 의견을 제시할 있고 계획의 변동이 있을 있지만 제작자의 뜻에 따르는 현명합니다. 엎어져도 제작자의 책임이고 제작자가 알아서 일이기에 배우는 대본을 해석하고 연기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B.C. 1447 쯤에 이집트를 나와서(출애굽을 해서) ‘엑소더스제작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40년이 걸린 BC 1,407 쯤에 광야생활을 끝맺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면(in the midst of them),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더욱 앞당겨질 있었던 영화 엑소더스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봅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완벽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이게 뭡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이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였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천국입니다.

길로 가는 길이 불안하고 불만스럽겠죠. 하지만 그를 믿으면 나라로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 천국 주연, 조연, 엑스트라 배우입니다. 좋아도 싫어도 역할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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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Testament Exhortation on Behalf of the Immigrant
Old Testament Exhortation on Behalf of the Immigrant by Edu-Tourist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율법이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주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약속의 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며 목적지로 가려고 애썼으나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보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보면서 행실과 파워로는 하나님 나라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율법이 필요한 것은 목적지로 가는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 도달은 결국에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의 신명기와 야고보서를 읽으면 행위를 강조합니다. 지킴을 강조합니다. 율법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과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율법과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만 완성됨을 있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목적지로 있음

모세의 율법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야고보서의 야고보도 결국엔 은혜를 강조함을 보면서 율법은 목적지로 가는 어떤 (vehicle) 있지만 틀을 움직이며 끝까지 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끝까지 없음을 알게 됩니다. 믿음을 행위로 옮기면서 행위가 구원으로 이르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율법과 행위가 강조되는 이유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무리작업까지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발투수, 율법과 행위가 중간계투요원이라면 마무리는 결국 은혜, 예수입니다. 

야보고서 마지막 절을 보면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라고 결론을 냅니다. 무슨 말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행위를 잘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결국에는 사함은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가능하고 그것이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에도 율법을 배우고 행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신명기 3113).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아니라 완성시키거 왔다

무슨 말입니까? 율법은 분명 필요한 도구입니다. 연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구원과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은혜를 구하는 일입니다.


율법을 지키자는 결심? 부질 없어...

신명기와 야고보서를 읽을 나도 율법을 지켜서 칭찬받는 백성이 되어야겠다 생각하십니까? 부질 없는 생각입니다. 율법을 무시하자는 아니라 율법은 그런 목적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도무지 율법도 지키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임을 깨닫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결국 마음과 입과 몸을 하나님이 다스리게 해서 그분 안에서 되고 그렇게 되지 못한 이웃을 사랑하고 돕자는 율법의 목적이고 신명기와 야고보서의 뜻입니다.

관점으로 오늘 야고보서와 신명기를 읽어보십시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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