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htar
Ishtar by seriykotik1970 저작자 표시비영리


고린도전서의 배경은 미국과 비슷한 같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중시하는 고린도라는 도시의 사원(temple) 1,000명의 창녀를 고용해 비너스 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미국도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메카라고 있죠. 그래서 자유하면서도 방종하는 경향이 짙은 나라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항하는 보수세력도 강하게 있습니다.

섹스와 마약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에 고린도전서는 적용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는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와는 자리에서 식사도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아버지처럼 하는 간곡한 부탁이면서 명령이기도 합니다.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는데 그러면 교회에 누가 다니는 것일까요? 얼마 저는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5학년)에게 학교에서 누군가가 캔디를 주면 받아 먹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캔디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고 초등학교에도 마약을 파는 아이들이 침투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당연히 자식을 보호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마약을 파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어울려지내면 되겠죠. 그래서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렇다면 마약을 파는 아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아는 중에는 과거에 마약을 팔았던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녀가 됐죠. 자식에게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과 놀지 것을 말하면서도 편으로는 그들도 하나님에게서 사랑 받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도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질서를 위해 사도 바울은 그들과 어울리지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선교사를 보내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약 중독인 자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는 전도자를 보내실 것이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자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는 전도자가 도울 것입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니기에 소위 말하는 죄인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창녀를 측은하게 여기셨고 세리와 어울려 지냈습니다. 예수님이기에 그렇게 하실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혹받기에 쉬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있을만큼 믿음이 강한 자들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글을 받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믿음이 약함은 이미 고린도전서 1, 2, 3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들은 약간은 어설픈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초로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혜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별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분별력으로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분열될 수밖에 없고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훈계를 하듯이 강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를 비롯해 동성애자, 마약거래상, 다단계 판매를 목적으로 교회에 침투한 , 이단인데 교회에 혼란을 주기 위해 침투한 등은 모두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숙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도자, 선교사, 목사라면 이들을 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 경계선은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이들을 품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로 불렸던 자들 중에도 이런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도 있어야 합니다. 기회는 인간이 주는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뜻을 인간은 간파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고 어려움에 빠진 자들을 돌보는지 모릅니다. 마약중독자를 돕는 선교단체의 목사님은 마약거래상이었다가 나중에 그들을 돕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몸을 파는 직업을 가졌다가 나중에 목회자가 자식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탐욕스러웠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의 길을 가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앞잡이였는데 지금은 주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분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걸렸다가 지금은 금주 센터를 차리고 음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봉사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교회를 욕하겠습니까. 교회도 연약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고 질서도 필요한 몸체입니다. 특수 사역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특수 사역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관점으로 고린도 전서 1장부터 5장까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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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몰리 해스켈 (나남,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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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월에 이슈가 된 나영이 사건 또는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한국에 아직도 정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영이(가명)를 그렇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하고 내장이 몸밖으로 나오게 할 정도로 너무나 잔인하게 어린 아이를 다룬 것에 대해 술취한 상태였던 것을 참작해 12년 형이 내려진 것은 정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조두순이라는 사람은 이전에도 강간으로 잡혀들어간 적이 있기에 이번 형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한국의 법체계에 정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신명기 19장은 이러한 살인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신명기 19 21. 극악한 살인자에게는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는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집행할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라 재판관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재판관이 살인자에 대해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판결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이를 잘못 해석해 일반인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면 곤란해집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9.11이 터진 후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읖조렸는데 잘못된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재판관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 사회 판결 기관(UN과 같은)에서의 판단이 필요했는데 마치 미국이 세계 불의의 재판관인 것처럼 착각하고 이라크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9.11 사태의 피해자들에게는 그 공격이 정당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다시 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해냈습니다. 해석이 잘못되었고 출발도 잘못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와 판결 기관의 동의 없이 공격을 시작했기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반미감정이 솟아 올랐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무시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세계 질서에도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는 그래서 개독교는 없어져야 한다!”고 극한 주장을 펼칠 것입니다. 그러한 극한 주장, 무논리의 주장을 하는 분이 아니라면 성경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UN군이 한국으로 진입했을 때 이것은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지원군이었습니다. 그것은 국제 사회 판결 기관의 동의하에 일어났던 전쟁이었습니다.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신명기 1921절의 내용이 적절합니다.

한 개인의 잘못된 것을 정죄하는 재판 기관이 필요한 것처럼 국제사회에서도 그러한 기관이 있고 이 기관의 동의에 따라 잘못된 나라를 정죄하고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판하는 기관이 정의를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혼란이 일게 됩니다. 조두순 사건은 재판 기관이 법해석을 잘못했든지, 법이 잘못 제정되어 있는지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법을 바꾸든지 법해석을 다시 하는지 해야 할 것입니다.

법해석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겠죠. 그런데 이 사건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게 판결이 났습니다. 조두순은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명언이 적용될 수 없는 극악한 사람입니다. 악한 영이 그를 인도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카에도 극악한 사람들의 집단이죠. 그런 집단에 사형선고를 내릴 곳은 미국이 아니라 UN과 같은 기관입니다. 국제 사회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by BL1961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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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ion
Compassion by sniderscio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신명기 16장 하반절부터 신명기 18장까지 이스라엘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을 모세가 설교하고 있습니다. 리더라함은 재판장, 공직자, , 제사장(레위인), 선지자 등이었습니다. 특별히 신명기 18장에 나오는 제사장(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설교 내용을 읽어보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을 먹을 수 있지만 땅의 유산은 상속 받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즉 먹고 사는 일은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유산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진행을 맡은 레위인들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생겼고 구약의 역사를 통해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자도 생겼으며 인간에는 관심이 없는 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두는 자가 아님은 예수님의 예화에 분명히 나옵니다.

그의 예화에는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자를 레위인이 그냥 보고 지나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레위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돌려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결국 당시 천시되던 사마리아인이 그 행인을 돕게 된다는 예화입니다.

레위인은 백성의 십의 일조를 생활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면 목회자들은 그것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형 교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목회자가 교인들의 십일조로는 기초 생활도 못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목회자들의 연봉이 꽤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것은 헌금 액수가 높은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내상 (안태건) / 국내배우
출생 1964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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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내상 씨는 최근 모 프로그램에 출연, 목사보다 배우가 돈을 더 잘 벌 것 같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연세대 신학과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농담으로 던졌던 말은 사실 맞는 말입니다. 목사가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전체 목회자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들이 목회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며 기독교를 욕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모르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들의 양무리들을 돌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분들이 안티 기독 운동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소위 잘 나가는 목회자들은 공격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운동은 오히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안티 기독 운동을 하는 분들은 기독교를 이 사회에서 몰아내 깨끗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부질 없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운동은 오히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분들을 찾아가 돕고 있는 목회자와 그의 양떼들을 힘들게 해 그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인데 기독교를 엄청나게 욕해 놓으니까 나쁜 이미지를 벗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어도 여전히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마저 도매금으로 함께 빈대로 여겨진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십일조를 받아 자신의 배만 불리는 목회자도 있지만 기초 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도 있음을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초 생활을 하는 것 이상으로 부를 쌓는 목회자들도 신명기 18장을 보면서 회개를 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의 유산은 오직 주님과 그의 나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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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151-7

신앙의 선배들이 성경을 들고 신앙의 후배들에게 지적을 하면 후배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 굴레가 됩니다. 로마서 15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이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인내, 위로, 소망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들고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지적을 하고 엄포를 놓고 심지어는 협박을 합니다. 이단은 바로 성경을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는 집단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성경을 도구로 씁니다.


text decay
text decay by Yani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단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을 자유를 주는 책이 아닌 굴레로 만드는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위로가 되고 자유를 체험하고 소망을 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진 짐에 더 짐을 보태는 느낌이 든다면 이는 성경을 잘못 알려준 탓입니다. 물론 거룩한 부담이라는 게 있습니다. 예수가 짊어지셨던 거룩한 부담을 우리는 어느 정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성경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나의 아픔을 말할 수 없을 때 성경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있기에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위로와 소망이 없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위로의 존재가 아니라면 얼마나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부담과 엄포와 지적으로 가득한 설교를 듣다보면 듣는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담주려고 이 책을 남기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읽으면서 위로 받으라고, 읽으면서 하나님이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남기신 것입니다. 성경은 친절한 선생님, 친절한 멘토입니다. 성내고 화내는 선생이 아닙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야겠습니다. 관점을 바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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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7/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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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들 입맛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해석하다보니 어려운책 피곤한 책이 되어버렸어요.

    이단들의 이단 못지않게 뜻이 잘못 전달되게하는 중단이 더 어지럽게합니다.

    어렸을 때에 전화 놀이하던 생각이 납니다. 도시에서도 아주 잘 사는 집이 아니면 전화라는 것은 없던 때 이었읍니다. 두꺼운 종이로 콜라 캔 같은 둥그런 통을 만들고 부드러운 종이를 통의 한쪽에 바르고 실로서 상대방 쪽과 연결하여서 서로 떨어진 거리에서 귀에 대고 전화 놀이를 하였읍나다. 실을 타고서 울림이 전해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울림만이라도 주는 설교를 바랍니다.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해나가고 마지막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정확도를 마추는 께임을 한두번쯤은 해보셨지요?

    조금씩 틀리게 전달되어가다보면 마지막에는 엉뚱한 내용으로 바꾸어져버립니다. 밝은터님의 글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나는군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이 본래 주신 쉬운 설교를 바랍니다.
    • 2009/07/06 07: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사실 설교는 5-10분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길다고 생각이 듭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그만큼 뜻과 다른 메시지가 나가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118-32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의 관계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되냐고 질문을 하면 대체로 나오는 답변은 섹스, 폭력 자극적 컨텐트 으로 가득한 할리우드가 세상을 망쳐놓고 있다 답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슬렘 사회 지도자들도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를 싫어합니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영화가 모슬렘 사회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극적인 컨텐트가 거의 없기 떄문입니다. 한국 드라마 자체에 자극성이 없다는 아니라 사회로 수출된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할리우드 이야기로 돌아오면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영화 내용에 대해 자주 비평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좋아할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는 영화는 뜬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오히려 네가티브 이미지 마케팅 하게 됐습니다. , 기독교인들이 펄펄 뛰면 마케팅이 되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패러다임 시프트 이뤄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패러다임 시프트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는 인간사와 하나님 관점

로마서를 읽다보면 인간이 욕정대로 사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로 성적인 욕정이 나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런 성적인 욕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메시지를 던집니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내용이 주를 이루며 시가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28). 재미난 사실은 성경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구요. 요즘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바로 로마서 128 내용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사입니다. 우리는 중상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불손하고, 오만하고, 자랑하고, 악을 꾸미고, 우매하고, 신의가 없고, 무정하고, 무자비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만 그런 아니라 우리 인생사가 그렇습니다.

그럼 똑바로 살아야 되겠네

로마서 118절부터 32절까지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똑바로 살면 되겠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똑바로 있을까요? 스스로 위와 반대되는 삶을 있을까요?  그럴 없습니다. 인간은 내버려두면 어쩔 없이 허망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해야 일은 똑바로 사는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똑바로 살게 됩니다. 로마서 122절을 보면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존재라고 나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어리석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혼자 알아서 있다는 허망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필요한 것은 스스로 똑바로 사는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를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그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입니다. 세상을 만든 ( 1:20) 보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1:28). 그것은 기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라고 중심적인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뜻대로 됐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말을 들어줬다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뜻대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아니라 이미 우리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안에 있기 때문에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피조물이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뜻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훤히 알리셨습니다 ( 119). 우리가 거부할 없을 정도로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오신 일은 가장 명확하고 핑계를 없는 그의 뜻입니다.

할리우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 그렇다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떤 내용을 다룰 레벨이 있다면 인간의 문란한 삶은 A, B,C, D 있을 B 레벨이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B급에서 대화를 하고 언쟁을 하고 싸움을 합니다. A 레벨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self-glorification) 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사고방식이 바로 가장 우리의 죄입니다. 대중문화나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것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A 되니까 B,C,D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편지가 도덕적으로 살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해라,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다, 우리가 일은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우리 인간의 죄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버려두면( 126-28) 그렇게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생각할 때도 상당히 우리 중심적입니다. “내가 잘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오판입니다. 내가 잘하는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지 않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준비 중에 있는데, 하나님께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나요? 뜻에 따르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서고 주님 말씀하시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근원임을 너무나 압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를 것입니다.

Think Deeper

내가 니체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는 우리 세계에는 신적인 질서나 선의 자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세상은 인생을 살기에 무척 끔찍한 곳일 텐데, 니체도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아주 일관성 있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배척한 성경적 세계관에서 아무것도 빌려 생각이 없다. 그의 철학과 성경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대조는 매우 교훈적이다. 니체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도움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쟁점을 명약관화한 용어로 규정지었다는 점이다. <리처드 마우, ‘무례한 기독교,’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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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회퍼, 믿음과 정치에 관하여 by 윌리엄 페더러

    2009/04/10 15:17
    삭제
    1997년 지미 카터는 그의 책 <사랑의 실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니버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 머물도록 설득했다. 본회퍼는 거절했다. 그는 독일에서 박해받는 나머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갔고...히틀러에 항거하여...공개적으로 나치와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 본회퍼는 마침내 체포되었고 수감되었으며, 1945년 2월 4일, 연합군이 독일을 해방시키기 불과 며칠..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Savior
    2009/04/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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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없습니다... 당신이 신의 존재를 '안다' 구요??
    당신의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것을 믿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요.
  2. 2009/04/10 20: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나 이메일 주소가 있으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혹시 남겨주실 수 있으신지요...신의 존재는 관계 안에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설명으로 되는 건 또 아니겠지만요. 님과 저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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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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