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Jordan (1998)
Michael Jordan (1998) by Vedi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마이클 조던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혼자 득점을 독차지하다보니 팀 플레이가 되지 않아 승리로 이끌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7년 동안 그는 무관의 제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필 잭슨 감독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들고 나옵니다. 새로운 공격 룰을 만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선수가 균등하게 공격 기회를 얻는 공격방법이었습니다. 잭슨 감독은 그렇지만 조던을 제한시키는 것은 아니다. 조던은 이 공격 방식으로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던은 처음에는 이 공격 방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맘대로 공격해서 많은 점수를 내야 시카고 불스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가 이 공격 방식을 믿기 시작하자 불스는 달라졌습니다. 1인 군단이었던 불스는 5인 군단, 12인 군단이 됐습니다. 불스는 마침내 1991 NBA 챔피언이 됩니다. 잭슨이 들고 온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조던을 힘들게 하는 규칙이 아니라 그에게 챔피언 반지를 가져다 준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틀이 싫었는데 맞추다보니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틀이 조던에게 유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틀도 마찬가지입니다. 틀은 율법이겠죠. 처음에는 좀 불편한 것 같고 힘듭니다. 그러나 그 틀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면 감사하게 됩니다. 틀이 없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죠. 그리고 무너지겠죠. 조던이 그랬던 것처럼.

조던은 그러나 우승을 한 이후에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벗어난 플레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틀 안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도 했던 것이죠.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도 우리가 유연성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 틀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유연한 태도로 받아들여할 것 같습니다.

신명기 11장에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계명을 자손에게도 알려서 교육하라고 합니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자체가 내 영적 우월성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계명은 안 지킴만 못합니다. 계명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계명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든 안 지키든 여전히 창조주이시고 우주질서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우리에게 유익이 생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규칙을 줬더니 자녀가 잘 지키면 부모로서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데 자녀가 너무 규칙에 얽매이는 것 같으면 부모로서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규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부모는 기뻐할 것입니다.

댈러스 매버릭스라는 구단은 과거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공격 방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공격 방식으로 매버릭스가 승리하는 게 중요했는데 지나치게 공격 방식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 공격 방식은 댈러스에서는 폐기처분됐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오히려 인간의 창의적 삶을 가로막게 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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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그나
    2009/09/29 11: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생각의 유연성, 창의적인 생각, 나를 위하신 계명.
  2. 박영재
    2010/07/17 14: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읽었습니다^^ ㅎㅎ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밝은터
      2010/07/18 22:0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농구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준다는 것은 우리가 행위를 잘할 때 주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을 보면 행위로 복을 받은 자는 없습니다. 행위로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엎드린 자, 낮아진 자,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고 외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약속의 땅을 허락한 이유는 그들이 정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명기 96).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하게 하고 많은 일들을 하게 하고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기 때문에 복을 준다는 것은 복음의 핵심에 어긋나는 표현입니다. 신명기 9장은 온통 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너네가 의롭지 않지만 내가 약속을 이행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 만큼 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그의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의롭게 여겨 여러분에게 큰 복을 내리실 겁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하나님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사에서 의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곤고한 자라고 고백할 정도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께 완전히 손들고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의롭다는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자는 게 아니라 나 졌어요. 내 뜻대로 사는 게 아니군요라고 할 때 의로움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Indian Muslims Gather To Celebrate Eid ul-Fitr

모슬렘 교도들이 최근 워싱턴 DC에서 15시간 연속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이 의로워질 수 있을까요? 라마단 기간에 거룩하게 살면 의로워질까요?

종교 의식으로 보면 기독교가 이슬람교를 쫓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실한 무슬림은 하루에 세 번 예배를 드립니다. 기독교인 중에 하루 세 번 예배를 드리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종교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난 어쩔 수 없는 죄인이고 나는 예수님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게 진정한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 마음을 유지하는 자는 종일 예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백 번의 제사보다 한 번의 겸손한 마음, 낮은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을 읽어보시면 복있는 자가 어떤 자인지 나옵니다. 버릇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 게 아니라 심중에서 나오는 '나는 무기력하니 당신께서를 나를 책임지소서'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교만함과 의로움으로 가득하면 매일 예배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예배 횟수는 그 사람을 더욱 교만케 합니다. 자기 의로 구원을 받으려고 합니다. 무슬림과 유대교 분들은 자기 의로 구원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기독교는 자기 의로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교만한 자에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더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더 깨져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가난할 수 있고, 건강하지 않을 수 있고, 미련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유하고
, 건강하고, 너무 똑똑하면 자기도 모르게 높은 자리에 자신을 올려 놓습니다. 자기숭배, 우상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Jordan Bull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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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은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그는 자기숭배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료와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자기가 혼자 승리를 이끌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그의 소속팀인 시카고 불스는 강한 팀이 됐습니다. 조던이 자신을 조금 더 내려놓을 때마다 불스는 강해집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현재 상태에서 조금 더 내려놓는다면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이 확보됩니다. 팀 워크가 활동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우리는 주 앞에 더 많이 우리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 영혼은 바짝 엎드릴 때 비로소 주님을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게 됩니다. 종교 의식을 백 번 천 번해도 내 영혼이 낮아져 있지 않으면 그 의식은 그야말로 의식으로 끝나게 됩니다.

부유함도 주님이 주신 것, 건강도 주님이 주신 것, 지혜도 주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가난함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 질병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 미련함도 주님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신명기 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의미에서 복된 사람들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못난 자식도 부모는 사랑합니다. 포기하면 부모와 자식 관계는 끝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면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를 통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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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이들을 훈육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합니까
? 불편하게 만드는 겁니다. 아이가 불편을 느껴야 훈육이 시작됩니다.

아이가 편한 상태에서는 절대 훈육이 되질 않습니다
.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하면 성장이 안 됩니다. 약간은 불편해야 합니다.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도전적인 발언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최고라고 칭찬할 때 그런 도전이 없으면 나태해질 수밖에 없죠.

갑자기 유명해진 연예인들을 보면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태해져서 이전만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조던에게 도전적인 발언을 했던 사람은 그의 코치 텍스 윈터였습니다
. 조던은 나는 단 한 번도 윈터를 만족하게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윈터는 세계 최고의 농구 선수 조던의 부족한 부분을 항상 지적하곤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또 자녀를 쥐잡듯 잡으려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최고의 수준에 와 있지도 않고 아직은 약한 존재입니다. 또 자녀가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면 함부로 아이들을 잡으면 안 됩니다.

직장 상사가 이 내용을 읽고 부하들을 잡으려고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부하가 만족스러운 대우를 받고 있고 직장의 분위기가 성장에 목숨을 건 분위기라면 괜찮지만 섣부르게 그렇게 했다가는 팀워크를 망치게 됩니다.

그러한 강력한 훈련 및 훈계는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민족 중에서 마이클 조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이집트에서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까. 고통을 치르며 이집트에 있었고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나와 광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윈터 코치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훈련받은 민족이기에 십계명을 내려 그들을 훈련하려고 했습니다. 신명기 85절과 6절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십계명을 아프리카 오지에 가져가 이대로 지켜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는 윈터 코치가 이제 막 농구를 배우기 시작한 제 조카 진우(7)에게 지적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저는 윈터 코치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윈터 코치는 참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승진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친절하게 말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던에게는 엄격한 선생이었습니다.

계명이라는 것은 규칙이라는 것은 사람을 봐가면서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룹의 성숙도에 맞게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블로그 관련 강좌를 하나 열어서 두 달 동안 했는데 최신 정보를 모두 알려드리며 열심히 했지만 배우는 분들이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서 제가 했던 내용의
10%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받아들이는 분의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창녀촌에서 사역했던 최일도 목사님이 십계명을 강조해서는 되겠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의 내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상황을 봐가며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일도 / 목사,시인
출생 1957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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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하는 자의 수준이 아니라 훈련을 받는 자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의미에서 수준 있는 훈련받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 훈련이 너무 고되고 길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혼나면서 참아내면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서 예수 탄생을 결정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된 훈련에 대한 선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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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9 07: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스라엘 민족 수준의 우수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의 우수성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우리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없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항상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나라보다는 빵을 구했고 하나님의 의보다는 자기들의 명분이 앞섰었습니다.
    또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 2009/09/21 17:42
      댓글 주소 수정/삭제
      하나님의 긍휼이 그들의 우수성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긍휼을 베푸셔서...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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