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10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창조의 질서에서 두 단계 내려온 예수님   


시편
8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son of man)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 하나님-천사-인간-동식물의 순서인 것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를 본다면 사탄은 천사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며 비판을 합니다.

음악 이야기를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천사였습니다. 루시퍼는 이 음악을 하나님을 찬미하는 게 아닌 반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음악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그 음악이 오히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교회 음악이 아닌데도 감동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문세 씨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 상념에 휩싸여 과거를 회상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적인 무엇인가를 느낄 때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는 순전히 음악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 자체는 신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이문세 / 국내가수
출생 1959년 1월 17일
신체 키178cm, 체중8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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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타락한 천사가 이를 왜곡해서 인간에게 전달을 합니다. 하나님을 가리게 됩니다. 바로 이 가리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음악이 순전히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영을 가리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나 훌륭한 사람으로 봤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 나중에는 깨닫게 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사단은 오히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군대 사단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들보다 높기 때문에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사단의 무리를 쫓아냅니다.

하나님은 무려 두 단계나 존재의 레벨을 낮추며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는 것을 택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홍수로 뒤엎어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세상의 질고를 짊어졌던 것입니다. 홍수로 뒤엎어버리면 더 간단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그들은 그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고 자신들을 세상적으로 뜨게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옆에서 지내면서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사단을 쫓아내면서 그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사단을 쫓아내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그러한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그가 왜 십자가를 짊어지고 숨을 거뒀는지 아시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믿어버리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믿어지십니까? 어쩌면 우리는 마가복음 441절에 나오는 “이분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바람을 멈추게 하나?”라는 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아십니다
감독 울리히 자이델 (2003 / 오스트리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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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회 활동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마음이 믿겨질 때 비로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한 후에 이번 주 주일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Thinking of Grace


교회도 대형 교회여야 성공한 교회라고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큰 교회를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다
. 교회는 하나의 큰 가족이니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해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100명 남짓한 현재의 식구도 제대로 못 돌보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한 가정 한 가정씩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고, 아침엔 등교 시간까지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 없는 아이들 전화로 깨워 주고, 오늘은 다솜이 생일이고 내일은 건용이 졸업식이고…. 나는 항상 그들로 정신없이 바쁜 것을 기뻐한다. 성도들도 아이가 감기만 들어도, 치과에 갈 때도, 밖에 나가 놀다가 조금만 늦어도 나에게 전화를 한다. <유정옥,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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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5/03 19: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딸의 결혼식을 멀리서 가졌기에 동네인 켈리포니아에서 피로연을 가지려고 준비하면서 100여명으로 초청을 하였기에 나의 머리 속에 축하 손님의 전체에 관한 윤곽이 늘 잡혀 있기에 식탁에 좌석배치 등을 나름대로 친밀도 또는 대화하기 좋은 것 등을 파악하니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목사님이 교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싸이즈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드는군요.
  2. pine tree
    2009/05/04 04: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가 동물이 된거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겠네요.
    • 2009/05/04 10: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오...좋은 통찰력이네요..감사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433-34

 

말꼬리 잡는 사람


우리는 언쟁을 할 때
, 토론을 할 때 말꼬리를 잡아 늘어지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또 그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당신 말이 맞소”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적절한 비유입니다. 비유를 드는데 말꼬리를 잡아 늘어지면 그 사람은 대화에서 힘을 잃게 됩니다. 요즘 세대가 말꼬리 잡기에 능숙한 것 같습니다.

전체 문맥은 듣지도 않고 ‘말 하나’를 붙잡고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논쟁이 시작됩니다.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실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댓글을 달 때 말꼬리 잡는 방식이 참으로 많습니다. 글 쓴이의 의도는 파악하지 않은 채 몇 마디 했던 말을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뜯습니다. 그런 분들은 성경도 그런 식으로 읽습니다. 우상의 머리를 자르는 내용이 성경에 있으면 단군상도 무자비하게 막 자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 꼬리도 잘 잡습니다.


부부가 대화를 합니다
. 부부 대화의 핵심은 자녀라고 가정을 해봅니다. 자녀 교육이라고 해봅니다. 그런데 그 대화 중에 “당신 닮아서 그래”라는 말을 부부 중 한 명이 했다고 칩시다. 원래 하고자 했던 자녀 교육은 안중에도 없고 그 말을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서 감정싸움이 시작됩니다. 결국 핵심적인 내용은 대화도 하지 못한 채 엉뚱한 말꼬리 잡기로 싸움만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직장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되면 토론이라는 것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전도 방식


저는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는 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잠시 그곳에서 온라인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들어가자마자 말꼬리 잡기가 시작돼 결국은 본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하지 못한 채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제가 무슨 글만 올리면 핵심은 빗나간 채 엉뚱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말꼬리 잡기 댓글만 올라왔습니다. 끝까지 부드러운 말투로 마무리짓고 나왔지만 쩝!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셨기에 비유로써 그 상황을 빗겨나가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비유의 내용을 제자들에게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도’를 이해하려는 집단이었으니까요.


버트런드 러셀이 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 러셀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그 분조차 말꼬리 잡기 식의 논리를 그 책에서 펼쳤습니다.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작정을 했기 때문에, 예수를 공격하기 위해 작심했기 때문에 최고의 지성인도 논리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버틀란트 러셀 (사회평론,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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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였지만 바리새인을 붙들고 구차하게 설명하시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진리를 붙잡은 사람이기에 끝까지 설명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많은 경우 패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집니다. 특별한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끝까지 친절하고 부드럽게 전하기 때문에 최소한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는 않습니다. 전도한다고 하다가 결국 얼굴 붉히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길거리 전도에 나갔다가 상대가 나에게 불친절하고 악담을 내뱉었다고 같이 얼굴 붉히면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예수의 길 훼방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전할 기회는 분명히 옵니다. 그 때를 민감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아니라면 우리는 줄곧 부드럽고 친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말꼬리 잡는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적용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 우리의 논리와 세계관을 비난하려고 작정한 분에게는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아, 그렇습니까? 제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겠군요?”라고 하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계속 대화할 수 있는 길을 만든 후에 그분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쉬어가는 글


천국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끄는 것이 있습니다
. 그것은 바로 그곳에는 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구름에 앉아 천국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갈망하는 게 있다면 내 삶에서 죄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싸움이 끝나길 바랍니다. <존 맥아더, ‘성경의 핵심을 꿰뚫어라,’ p.131>

 

성경의 핵심을 꿰뚫어라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존 F. 맥아더 (생명의말씀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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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념
    2009/04/30 10: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뜸을 드리면서 상대방을 아끼면서 대화하는 맛을 기르면서 살고있읍니다. ' 이단 ' 보다 나쁘고 고약한것은 ' 중단 ' .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존중하여 듣지 않고서 남의 말을 중단시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겪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말씀을 듣다가 꼬투리 잡고 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실천하다가 중단하게되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울러 남을 위한 배려로 차분히 상대방의 '바디 렝귀지도'도 들을려고 노력합니다. 쇠뿔을 단김에 빼려고 하는 경향을 자제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대화하고있읍니다. 인내하는 것이 사랑 이기에 때로는 침묵의 시간도 있을 수 있으나 이런 태도는 중단이 아니라 꾸준한 대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 이라고 셍각합니다.
  2. 2009/04/30 11: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단과 중단....마음에 와닿는 표현입니다. 제 생각에는 중단됐음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내가 중단됐는지만을 살핍니다.

성경: 마가복음 435-41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20065월 영화 다 빈치 코드가 세상에 선보이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 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의 주제는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천사와 악마'라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독교가 헛된 종교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화해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다 빈치 코드의 저자인 댄 브라운은 기독교는 조작된 종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브라운이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혹은 믿지 않는 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충실하기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실제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2천 년 전에 잠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해 이적을 행사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그분의 제자들도 믿지 않았으니 2천 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이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댄 브라운 (Dan Brown) / 작가
출생 1964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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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41절을 보십시오. “저가 뉘기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제자들이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입니까이 말을 하기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병고침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쫓아다녔던 것일까요? 그런 능력을 어디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부활하시자 제대로믿기 시작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라고 말하기에는 현실성과 역사성이 너무나 뛰어납니다. 증인들도 너무나 많았고, 그가 선보이신 이적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2천 년 후에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이 아니다


예수는 그저 성인이 아닙니다
.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저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엄청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댄 브라운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엄청난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댄 브라운의 결론은 예수는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체 글의 맥락을 보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부처, 공자, 마호메트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지 미치광이였는지의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신 후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적당히 교회에 다니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신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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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용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미치광이인가라고 선택을 해야 한다
. 나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갖고 나는 그의 가르침을 매일 배워야 한다. 그의 뜻을 따라야 한다.

 

Thinking of Jesus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곧 참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런 지식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느 곳을 가든지 치유, 화해, 새로운 삶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에 적절하고자 하며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침내 사라져 버릴 것이며, 오직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의 온 존재를 다해 우리의 형재 자매들인 온 인류에게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깊은 내면을 만드셨으며, 어머니의 태에서 당신을 조성하셨습니다.”(시편 139:13참조)라고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예수의 이름으로,’ p.29-30)>


헨리 나우웬 (Henri Jozef Machiel Nouwen) /
출생 1932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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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 [연예인] - 주지훈과 음식을 나누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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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장
 

상식을 초월


상식
(common sense) 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사회에서 어떤 시기에 보통 사람들이 특별히 숙고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의견이나 판단.’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당시의 상식은 인간의 몸으로 있는 자는 죄를 용서할 수 없고
(7), 성직자는 죄인들과 사귀는 게 옳지 않고(16),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24)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식을 무너뜨린 분이 아니라 뛰어넘는 분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과 상식을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그 결과물에 있다. 상식을 뛰어넘은 예수님은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을 이롭게 했다. 그는 결코 상식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는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지 율법을 없애신 분이 아니다.

상식을 넘어선 예수님은 결국 병자를 고쳐주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셨다.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을 이롭게 한다.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실족케 한다. 중요한 차이점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상식을 무시하면서 마치 상식을 초월한 사람인 양 행동하지만 그 결과물은 너무나 다르다.

 

스캔들?


예수님이 소위 말하는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눴던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스캔들감이었다. 마약 복용으로 체포된 연기자 주지훈과 같은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예수님은 함께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의 행동은 '죄'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예수님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공격했다. '죄'를 방치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지훈 / 탤런트,국내배우,뮤지컬배우
출생 1982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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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 (공식) 세계를 정복할 배우 주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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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목적은 그러나 죄인들을 이롭게 하게 함이었기에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누군가가 이 죄인들을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분명 스캔들일 것이다. 자기 유익을 추구했더라면 스캔들이다. 오늘날 많은 스캔들은 결국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타적인 스캔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성적인, 물질적인, 지위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면에서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스캔들로 몰고 가려고 했지만 그의 이타적인 행위는 그를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결국 예수님의 행동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잘 아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분은 타종교인들과 교류를 부지런히 한다. 기독교계 내에서는 이를 마치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릴 때처럼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 목사님이 타종교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분명 스캔들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다. 예수님이 그랬기에 우리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것이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를 봐야 한다. 이타적이라면, 자기의 유익을 취하지 않으려는 동기였다면 사랑의 마음이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적용


어떤 일을 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 때로는 욕을 먹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할 때 이것이 이타적인 것이라고 판단이 든다면, 사랑의 마음이라면 그대로 할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오해하겠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예수님은 아신다. 성령께서는 위로 하신다. 나는 그런 억울한 경험이 있지만 내가 침묵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하기에 나는 침묵하기로 했다. 위로하심을 경험했다.

 

Think Deeper


자유롭다는 것은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말할 수 있는 자유
, 내 행동이 비난을 받고 비웃음을 사고 쓸데 없는 일로 여겨지더라도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음을 나타내는 모든 징표들로 인하여 감사드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나는 내가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온전히 믿을 때, 진정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헨리 나우웬,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에서>

 

헨리 나우웬 (Henri Jozef Machiel Nouwen) /
출생 1932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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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지훈은 재기해야 한다.

    2009/04/28 17:31
    삭제
    마약 복용 혐의로 조사 받는다는 연예인 이름 중에서 주지훈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과 당혹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부실 수사를 덮기 위한 연막 작전이라는 수사 발표의 뒷 배경에 대한 말들이 쏟아지고, 이렇게 사건 자체만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신뢰가 사라진 현실이 짜증나기는 하지만, 그 배경이 어찌되었던 촉망받던 유능한 젊은 배우의 추락은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게다가 이제 겨우 잘생기기만 한 모델 출신 연기자의 꼬리표를 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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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님안에
    2009/04/28 02: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상식을 넘어서 주시는 주의 은혜를 오늘도 감격합니다.
  2. JoeY
    2009/04/28 15:4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람을 품을줄 아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과 상식을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그 결과물에 있다.'는 밝은터님의 생각이 마음에 듭니다.


성경: 마가복음 11장23절-24절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이해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에게일수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 제자들에게 손을 잘라라, 눈을 빼라는 등의 말씀을 하신 것은 진짜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까? 그만큼 중요하니 잘 지키라는 뜻으로 강하게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3절과 24절의 말씀을 보면 산을 움직이는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산을 상상합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하신 강한 비유였습니다.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나마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정도로 예를 드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시면 예수님이 관계적이면서 기능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말씀의 완급을 조절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투수의 완급 조절과 예수님의 완급 조절

야구장의 투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 투수가 계속 똑같은 스피드로 공을 던진다고 하면 타자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주 치기 좋겠죠. 투수는 완급을 잘 조절해야 좋은 투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빠른 공을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느린 공을 던지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변화구를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유인구를 던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공을 던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의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강한 어조로 말씀을 전하셨다가 어떤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듣게 비유로 말씀하셨다가 어떤 때는 그냥 명령을 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 분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었슨비다. 그 목적을 위해 완급 조절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야구를 하셨다면 제구력이 뛰어난 그리고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직구 투수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마치 계속 빠른 공만 던지는 투수로 생각합니다. 항상 빠른 직구로 상대에 직격탄을 날리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완급을 조절하는 제구력(control)이 뛰어나고 커맨드(command)가 좋은 투수였습니다.

야구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투수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졌느냐만 보면 야구 정말 재미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의 환상적인 완급 조절의 경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완급 조절, 컨트롤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야구팬은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그래서 공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됩니다.

그렉 매덕스 (Gregory Alan Maddux) / 외국야구선수
출생 1966년 4월 14일
신체 키183cm, 체중84kg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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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역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그저 직구만을 던지는 투수로 이해했을 때 성경은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완급 조절을 잘 하는 투수로 이해한다면 성경의 다이나믹한 면과 유연성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의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해야!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직구 투수만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럼 산을 움직이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로 이해하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들도 믿음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산과 같이 앞에 우뚝 서 있는 장벽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장벽을 기도와 믿음으로써 넘어서야 하는데 우리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옆에 계심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예수님은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와 같은 분이었다는 것
,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어려움을 극복할 믿음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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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yuny
    2009/04/21 03: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금은 장벽같이 보이는데...그렇군요!
    한걸음씩 가다보면 지나왔던 날과 같이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볼수 있으리라...
  2. Joe Yang
    2009/04/21 07: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구원투수로 나타나실만도 한데 나타나지 않으실 때는 거기에도 뜻이 있으시지요. "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
    • 2009/04/21 11: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구원투수!!! 필요해요....
  3. Joe Yang
    2009/04/21 22: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독이 구원투수에게 싸인을 보내는 중이라 믿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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