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5일자 미주 중앙일보 종교면에 실린 글입니다.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짝사랑의 경험이 있다. 나 역시도 결혼하기 오래 전에 한국에 사는 어떤 여학생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지내면서 좋아하기 시작해 이후 무려 6년 동안이나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좋아했고 미국으로 이민 온 후 2년째 되는 해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모습도 가물가물한 사람을 짝사랑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안다.

8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전화통화도 해보지 못한 여자를 짝사랑함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제대로 대면해보지도 못했고 성경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분을 사랑한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데 그와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고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를 사랑한다. 왜 그를 사랑할까.

그냥 좋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냥 좋은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면 때로는 심장으로 대화할 기회도 있다. 오디오나 비디오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가슴에 대고 속삭이시는 그분의 기운이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녀의 졸업 사진 한 장으로 그리움을 달랬던 것처럼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성경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빨리 보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날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그를 만나는 시간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분은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대신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게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리워하는 분 대신에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분이 원하시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 찌들어 그에 대한 그리움도 식을 때가 있고 그분의 존재마저도 의심할 때가 있다. 과연 나를 정말 기다리는지 정말 계시긴 한지 그에 대한 족적이 믿을만한 것인지 등에 대해 잠시나마 의심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그리워하는 DNA가 심겨진 것 같다. 어릴 적 짝사랑녀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창조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같다. 8년 동안 기다렸던 그녀를 만난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 말을 했더니 아내는 "심장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얻어터지고 싶냐"고 말해 우리는 5분 동안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는 이 말을 나누며 한바탕 천국에서 경험할 폭소로 쏟아지는 엔돌핀에 즐거워했다.

나의 짝사랑은 8년 동안의 기다림이었으니 얼마나 긴 여정이었던가. 이보다 더 긴 기다림 끝에 하늘에서 만날 그분을 보게 될 순간의 느낌은 그것에 100배 1000배 10000배 더 환희에 휩싸일 것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늘에서 만날 그 분은 나보다 앞서 나를 짝사랑했던 분이다. 그리워하며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만나게 될 그를 그리며 2010년에는 더욱 그가 주실 일에 매진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짧고도 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번의 칭찬  (2) 2010/05/16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소서  (0) 2010/03/24
하나님을 향한 짝사랑  (2) 2010/02/02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한 사람  (4) 2010/01/28
Where Man Covers His Mouth  (0) 2010/01/27
진정한 부자는  (0) 2010/01/26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27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Tiny
    2010/02/04 04: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실감납니다...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 밝은터
      2010/02/05 11: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답글에 감사합니다.

Tiger Woods
Tiger Woods by Keith Alliso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신명기를 읽는 마지막 날입니다. 신명기 32장부터 마지막장인 34장까지 모세의 유언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는 노래로써, 설교로써, 자신의 백성에게 마지막 발언을 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정신을 차리면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리더인 모세가 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우리는 그런 고통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모세와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 어머니와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네가 39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지. 40년이 되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위로가 됐습니다. 39년 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도 있었고(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을 배반한 적도 있었고(베드로처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내 멋대로 살려고 했을 때도 있었는데 그 하나님은 여전히 나에게 저 멀리에 있는 약속의 땅을 보여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왜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주시니 않냐고 불평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엉망으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죠. 온전히 순종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내 맘대로 살려고 할 때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저를 기다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신명기 32장과 33장은 그런 내용입니다.

내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저의 경우에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속에서 끊임없는 신에 대한 배신을 자신이 직접 책임지셨습니다. 그 혜택은 그분들이 사랑하는 백성이 입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못 들어가지만 그의 백성은 들어갈 수 있다는 그 약속은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의 폭포수에서 언제까지 머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폭포수에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에 걸리죠. 나에 맞는 수준에서 폭포수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폭포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폭포수를 너무 함부로 대하면 물이 말라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징계인 것입니다. 숨으시는 하나님이 3220절에 나옵니다. 우주의 창조자가 숨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상징적으로는 폭포에 물을 떨어뜨려주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에 큰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이지만 그 은혜와 창조주를 보지 못하면 물은 말라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리더를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꾸시는 것은 바로 숨으시는 하나님의 전형입니다. 모세는 온갖 기적과 이적을 행했고 이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리더가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던져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숨으시면서 기다리실지, 아니면 대면하며 기다리실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18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율법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내렸을 때 제1 목적은 도덕적인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킬 때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에게 그리고 비유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알게 하고 자신이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고 완성시키러 왔다는 말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120세가 되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함을 하나님으로부터 통보받았습니다. 신명기 31장 초반부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걱정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1장에서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매주 그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레위인들에게 7년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주라고 합니다. 이유는 역시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31:9-13)



7일마다 (때로는 더 자주)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대형 교회에서 중형교회에서 소형교회에서 가정교회에서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큐티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기 쉬운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를 잊지 않아야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시상식이 열렸다고 상상해 봅니다. 우리가 그 시상식에 수상 주인공을 초대해서 가운데 무대에 세워줘야 그가 수상자로 인식이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상식장 주변에서 서성 거리는 배우가 되겠죠. 그 배우는 이름이 불려져야 가운데 무대로 올라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계십니다. 그럴 이유가 하등에도 없는데 사랑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드려야 그가 무대 가운데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나님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로 영광스럽지만 하나님은 자녀로부터 영광됨을 칭송받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에게서 아빠는 최고야! 엄마는 최고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고입니다. 온갖 기적을 보이시고 배고플 때는 양식을 베푸시고 적들이 있을 때는 먼저 가셔서 그 적들을 해결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칭송은커녕 인식도 못하고 삽니다. 뛰어난 배우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그 배우가 누구더라?”라고 질문하는 자들처럼 삽니다. 배우가 눈앞에 있는데 뉘시더라?”라고 하면 그 배우가 얼마나 민망스럽겠습니까. 배우는 숨고 싶겠죠. 하나님도 백성이 인식하지 못하면 숨으십니다. 신명기 3116절 이하에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숨지 않으시도록 오늘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찬송해야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17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네 번째 시간입니다.


백 투 더 퓨쳐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1985 / 미국)
출연 마이클 J.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크리스핀 글로버
상세보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법칙들을 지키는 분은 교회에나 사회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킴으로써 약속된 땅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며 공부함으로써 약속된 땅을 향한 방향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지금 약속된 땅을 향하는 길에서 내비게이터(GPS) 망가진 상태입니다. GPS 바로 하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그들은 하나님을 없게 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후세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에게서 비슷한 것을 더욱 자주 보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것이 내비게이터를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있는 타임머신 비슷한 것을 허락하셨는데 바로 예수입니다.

영화 백투더퓨처 보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주인공들이 다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비게이터를 따라갔던 이스라엘 민족과 타민족이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있도록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 선물을 하신 것이죠.

예수가 없다면 이스라엘 민족처럼 외지에서 40 동안 방랑하게 됩니다. 인간이 40 동안 방랑하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당연한 같습니다.

하나님은 해결방법을 내놓으셨는데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율법이 빛을 비추는 손전등이었다면 예수님은 자체입니다. 자체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의 모든 땅에 빛이 비쳤지만 빛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기독교인이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빛이 비친 곳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굳어져서 빛을 피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손전등을 무시했던 상황과 별반 다를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빛은 마틴 루터 주니어, 간디, 테레사 수녀,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비쳤습니다. 그들은 빛의 힘으로 세상을 밝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빛을 피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강력하게 비추고 있어도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립니다. 제발 나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2009/09/09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1)] 승패를 초월하는 길
2009/09/10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2)] 순종하는 배우
2009/09/11 - [영화] - [신명기와 대중문화의 만남(3)] 영화 '해운대' 대피령 왜 못 내렸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9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Exodus (Cassandra talking version) by Iguana Jo 저작자 표시비영리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신명기 1장부터 440절까지는 역사의 회고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불만만 터뜨린 것에 대한 결과가 소개됩니다. 그러나 중간에 순종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대본에는 결국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배우가 반발하는 바람에 늦춰진 것을 보게 됩니다. 배우가 대본 내용에 불만을 품고 연기를 하지 않으면 영화는 제작될 없습니다. 소위 말해 엎어지기도 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지 않으면서 엑소더스라는 영화가 엎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주어집니다. ‘엑소더스제작자인 하나님은 마치 이경규 씨가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엑소더스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습니다. 40 이상 걸렸습니다.

배우는 제작자의 기획에 따라야 합니다. 물론 작은 부분에서 의견을 제시할 있고 계획의 변동이 있을 있지만 제작자의 뜻에 따르는 현명합니다. 엎어져도 제작자의 책임이고 제작자가 알아서 일이기에 배우는 대본을 해석하고 연기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B.C. 1447 쯤에 이집트를 나와서(출애굽을 해서) ‘엑소더스제작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40년이 걸린 BC 1,407 쯤에 광야생활을 끝맺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있었다면(in the midst of them),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더욱 앞당겨질 있었던 영화 엑소더스였습니다.

우리의 삶을 봅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완벽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이게 뭡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 영화의 엔딩 장면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이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였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의 땅은 천국입니다.

길로 가는 길이 불안하고 불만스럽겠죠. 하지만 그를 믿으면 나라로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 천국 주연, 조연, 엑스트라 배우입니다. 좋아도 싫어도 역할을 감당해내야 합니다. [밝은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9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05)
후원 (1)
운영자 소개 (1)
텔레비전 (12)
영화 (21)
음악 (10)
유명인 (26)
패션 (2)
스포츠 (62)
예술 (1)
게임 (3)
광고 (1)
안티 기독 (1)
엔터테인먼트 일반 (6)
문화 행사 (2)
仁터넷 (21)
Re-formation (38)
새벽 생각 (2)
짧고도 긴 생각 (69)
링크 (14)
사진으로 보는 세상 (3)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