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로마서 21-16

신은 없다?

어제 쓴 글의 댓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습니다.

신은 없습니다... 당신이 신의 존재를 '안다'구요?? 당신은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요.”

그 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신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추가할 게 있습니다. 그분에게 신은 없습니다. 신을 경험한 자에게 신은 있습니다. 니체에게 신은 없지만 테레사 수녀님에게 신은 있습니다. (주: 니체는 신이 없다고 말한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신이 없는 것처럼 돌아간다고 말한 것임). 버트란드 러셀에게 신은 없지만 그의 딸(목사의 아내)에게 신은 있습니다. 신은 관계적입니다. 신은 기능적입니다. 예수를 보내신 신은 관계적이고 기능적인 신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관계는 이성으로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지만 신의 존재를 알려면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글 자체는 이성이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은 신과의 영적인 교류가 이뤄지면 성경은 관계를 맺어주는 말씀이 됩니다. 이 세상의 일도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게 관계에서 이뤄지지 무엇을 많이 안다고 이뤄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해가 전파되어 우리가 머리로 알 수 없는 신을 머리로 알게 끔 프로그램화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원래 인간은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양심을 바탕으로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이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졌습니다.

신을 인정하는 양심

    사도 바울은 로마서 214절과15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양심이 있어서 그것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심어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런 게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도덕과 율법이 필요할까요? 이는 아마도 인간이 양심만으로 버티기에는 죄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덕과 율법이 없으면 복잡한 인간 사회에서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인간이 양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인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율법 없이도 율법을 실천합니다. 양심으로 살기에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하고 돕지 말라도 해도 돕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도 한국인들 중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심 또는 신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와서 그 양심이 더욱 다져지고 강해져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마치고 민초를 위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버트란드 러셀도 신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사위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학비를 지원했는데 이는 양심에 바탕을 둔 행동입니다. 이성으로는 절대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분이었습니다.

양심을 가리는 교만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손가락질을 받을까요? 첫째는 양심을 실천하며( 2:13)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는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생기는 부조화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가 나쁘지는 않지만 덩치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한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내가 알려질수록 피할 수 없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그런 것과 패키지로 따라온다.” 교회가 크건 작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으로 회복하는 게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양심에 털났다

    양심에 털났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양심에 털이 나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릅니다. 그러면 근본 양심은 이것을 압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분명히 압니다. 믿는 자의 경우에는 성령께서 그것을 알게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원래의 양심에 성령까시 합세하시니 괴롭습니다.  이 때 우리는 두 가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남 탓하는 것입니다. 내 털난 양심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남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는 회개를 합니다. “, 내가 이렇게 양심에 털이 나 있구나.”하고 말이죠.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로마서 24).  그 용서와 인자하심을 깨달으면 내 양심도 회복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 자는 결코 신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신이 없이는 경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정신적인 문제로 해석하더군요.

앤서니 김의 양심 회복

   신의 존재를 거부하더라도 죽음과 고통 앞에서는 신의 존재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일보 LA 2009 412일자 스포츠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골프 선수 앤서니 김에 대한 기사입니다.

    앤서니 김은 경기 후 소감에서 "대회 첫 날 75타로 부진해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9일 자신보다 한살 어린 LA 에인절스의 유망주 투수 아덴하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2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읽고 골프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앤서니는 "기사 맨 마지막 문장에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22살이라고 해도 말이다. 때문에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야 된다'고 써 있었는 데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평생 꿈이 매스터스에서 한 번 쳐보는 것이었다. 사실 인생에서 보기나 3퍼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여기 나와서 골프를 친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기쁨이라는 걸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오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해서 버디 11개를 잡은 것 같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원문 기사 보기]

    남의 죽음을 보면서 그 안에 있던 양심이 살아난 것입니다. 원래 그 안에 있던 양심은 스포츠를 통해 기뻐하고 감사하고 초월적인 경험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에서 주는 메시지가 온통 성공, 승리, 돈이니 그의 양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죽음과 육체적인 고통은 메가폰 역할을 합니다. 양심 메가폰.  양심 메가폰을 든 존재는 바로 신입니다. 신이 없으면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양심을 작동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양심에 털난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우리에게 다가올 게 있습니다. 바로 심판입니다. 신의 심판입니다 (2:5). 그럼에도 심판권이 있는 신은 인내하며 끝까지 기다려주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2:4).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털난 양심을 계속해서 제거합시다. 죽는 그날까지.

적용

    개인적으로 양심에 꺼리끼는 일이 많이 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다 내놓고 양심 회복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래 심어주셨던 그 양심. 홀가분하지는 않다. 여전히 내 안의 양심이 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 털난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 종일 회개의 기도를 하고 싶다.

Think Deeper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바로 그런 깨끗함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주여, 깨끗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깨끗함과 정직함의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께는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의 능력이 아니라 깨끗함에 대한 갈망입니다. [김동호 목사, ‘깨끗한 크리스천’,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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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2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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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2. 2009/04/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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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은혜라!
  3. 2009/04/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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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우리는 깨끗하고 순결한 크리스챤이기 위해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회개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하는 악순환만 연장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고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은혜를 주셨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계속 순결하고 깨끗해 지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 보다 잘 되질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을 네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지키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끗하고 순결한 크리스챤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나 그 생명이 약하면 안됩니다.
    생명을 살리리고 강하게 하려면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자백하여 나의 모습을 인정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매일 매시간 매분 말씀으로 우리의 생명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4. 2009/04/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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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설교 말씀을 듣는데 예수님의 끊임 없는 용서와 격려가 베드로를 살렸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실망했고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설교자는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끝까지 이해하고 격려하고 부활 후에 세워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가 부활의 핵심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참으로 은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발버둥칠 때는 안 되는데 성령의 에너지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강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결단이지만 그렇게 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성령 전체에 흐르는 Theme입니다. 내가 하려고 해서 잘 되면 교만이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 2009/04/1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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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내가 하려고 함은 주님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은혜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활된 생명은 강력 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강력하다면 우리는 또,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 할 필요성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강력하다면 우리는 바로 변화되고 거룩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으로 부활된 생명은 "강력하다!" 보다는 "우리는 말씀의 양식으로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다!"가 필요합니다. 아멘!
      우리가 매일 매일 주의 말씀을 먹어 부활 생명을 더 강하게 하길 원합니다.
  5. 2009/04/1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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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게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6. Joe Yang
    2009/04/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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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k Deeper가 Think Looser로 흔들리면서 글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것 같아서 석연치 않습니다.

    '깨끗함에 대한 갈망'은 이런 대화의 광장에서 남의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의 더럽고 지저분한 모습을 또 발견하면서 더-더 씻어지기를 바랄뿐 아니라,

    남의 그런 모습도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끼어(?)들어서 함께 깨끗해지려는 안타까움이 '깨끗함에 대한 갈망'이라는 뜻으로 새김질하면서 다시 한번 더 글을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7. 2009/04/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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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 감사합니다. 그 글을 올린 의도는 깨끗함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질려고 해도 깨끗할 수 없는게 깨끗함이라는 정의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중심에 내 생각, 내 정의, 내 의가 있을 때 그것이 깨끗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도 내 생각, 내 정의, 내 의겠죠...^^


로마서 118-32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의 관계

기독교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되냐고 질문을 하면 대체로 나오는 답변은 섹스, 폭력 자극적 컨텐트 으로 가득한 할리우드가 세상을 망쳐놓고 있다 답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슬렘 사회 지도자들도 같은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를 싫어합니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영화가 모슬렘 사회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극적인 컨텐트가 거의 없기 떄문입니다. 한국 드라마 자체에 자극성이 없다는 아니라 사회로 수출된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할리우드 이야기로 돌아오면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영화 내용에 대해 자주 비평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좋아할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는 영화는 뜬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오히려 네가티브 이미지 마케팅 하게 됐습니다. , 기독교인들이 펄펄 뛰면 마케팅이 되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패러다임 시프트 이뤄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패러다임 시프트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는 인간사와 하나님 관점

로마서를 읽다보면 인간이 욕정대로 사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로 성적인 욕정이 나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런 성적인 욕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메시지를 던집니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내용이 주를 이루며 시가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28). 재미난 사실은 성경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구요. 요즘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바로 로마서 128 내용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사입니다. 우리는 중상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불손하고, 오만하고, 자랑하고, 악을 꾸미고, 우매하고, 신의가 없고, 무정하고, 무자비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만 그런 아니라 우리 인생사가 그렇습니다.

그럼 똑바로 살아야 되겠네

로마서 118절부터 32절까지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똑바로 살면 되겠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똑바로 있을까요? 스스로 위와 반대되는 삶을 있을까요?  그럴 없습니다. 인간은 내버려두면 어쩔 없이 허망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해야 일은 똑바로 사는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똑바로 살게 됩니다. 로마서 122절을 보면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존재라고 나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어리석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혼자 알아서 있다는 허망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필요한 것은 스스로 똑바로 사는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를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그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입니다. 세상을 만든 ( 1:20) 보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1:28). 그것은 기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라고 중심적인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뜻대로 됐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말을 들어줬다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뜻대로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기도했기에 하나님이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아니라 이미 우리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안에 있기 때문에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피조물이 일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뜻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훤히 알리셨습니다 ( 119). 우리가 거부할 없을 정도로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오신 일은 가장 명확하고 핑계를 없는 그의 뜻입니다.

할리우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 그렇다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떤 내용을 다룰 레벨이 있다면 인간의 문란한 삶은 A, B,C, D 있을 B 레벨이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B급에서 대화를 하고 언쟁을 하고 싸움을 합니다. A 레벨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self-glorification) 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사고방식이 바로 가장 우리의 죄입니다. 대중문화나 할리우드 영화는 바로 이것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A 되니까 B,C,D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편지가 도덕적으로 살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해라,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분이다, 우리가 일은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우리 인간의 죄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버려두면( 126-28) 그렇게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생각할 때도 상당히 우리 중심적입니다. “내가 잘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오판입니다. 내가 잘하는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지 않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준비 중에 있는데, 하나님께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나요? 뜻에 따르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서고 주님 말씀하시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근원임을 너무나 압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하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를 것입니다.

Think Deeper

내가 니체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는 우리 세계에는 신적인 질서나 선의 자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세상은 인생을 살기에 무척 끔찍한 곳일 텐데, 니체도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아주 일관성 있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배척한 성경적 세계관에서 아무것도 빌려 생각이 없다. 그의 철학과 성경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대조는 매우 교훈적이다. 니체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도움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쟁점을 명약관화한 용어로 규정지었다는 점이다. <리처드 마우, ‘무례한 기독교,’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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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회퍼, 믿음과 정치에 관하여 by 윌리엄 페더러

    2009/04/10 15:17
    삭제
    1997년 지미 카터는 그의 책 <사랑의 실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니버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 머물도록 설득했다. 본회퍼는 거절했다. 그는 독일에서 박해받는 나머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갔고...히틀러에 항거하여...공개적으로 나치와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 본회퍼는 마침내 체포되었고 수감되었으며, 1945년 2월 4일, 연합군이 독일을 해방시키기 불과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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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vior
    2009/04/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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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없습니다... 당신이 신의 존재를 '안다' 구요??
    당신의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는것을 믿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요.
  2. 2009/04/10 20: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나 이메일 주소가 있으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안타깝습니다. 혹시 남겨주실 수 있으신지요...신의 존재는 관계 안에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설명으로 되는 건 또 아니겠지만요. 님과 저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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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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