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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이슬람교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다. 미국 이슬람 관계 위원회(CAIR)의 발표에 따르면 70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US 뉴스&월드 리포트는 500만 명이라고 보도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 내에서 이슬람교도의 수가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증가 추세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숫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왜 개종을 할까? 개인마다 이유가 다를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하나는 이슬람교의 율법주의가 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는 은혜를 강조하며 율법에 느슨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이슬람교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킴으로써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아 개종을 한다고 한다. 사실 율법에 관하여는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율법은 그들의 신앙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신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는 자만이 오직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다르게 말한다. 예수를 믿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엉망으로 살아도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너무 쉽게 느껴진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자들은 천국에 가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다가선다.

기독교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자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죄인들의 이야기다. 예수님은 완벽한 그들보다는 불완전한 그들과 주로 지내셨다. 당장 그의 열두 제자들이 그랬다. 제자 중에는 당시 사람들이 경멸했던 세리도 있었고 스승을 돈 받고 판 유다도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이는 친구와 길을 가다가 아버지를 만났는데 친구가 "네 아버지 아니냐"고 물었을 때 "내 아버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죄였다. 그랬던 베드로는 시간이 지난 후에 신실한 사람이 되었다.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자신의 스승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전승이 있다. 그것도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한 껍질, 두 껍질을 벗겨보면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기독교인인데 그들의 삶은 세상에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점점 더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수록 놀라운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법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 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법을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전에 기독교인으로서 노출되다보니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다.

설렁탕을 끓일 때 오래 끓일 수록 진국이 되어 맛있는 국을 먹을 수 있다. 기독교를 볼 때 오래 끓인 기독교인을 봐야 그 진수가 보인다. 맨발의 노인인 최춘선 할아버지가 그런 분 중 한 분일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그런 진국 크리스천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어렸을 때 젊었을 때는 세상에서 지적을 받을만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진국이 아닌 설렁탕을 먹을 때 맛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국이 아닌 기독교를 만날 때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예수님을 만나 되는데 그것을 못 하고 '싱거운 설렁탕'이라고 쉽게 포기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밝은터]

맨발천사최춘선할아버지(보급판)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어린이기독교 > 어린이기독교일반
지은이 편집부 (규장,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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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승 목사 캐리커처
양목사님 캐리커처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양 목사님의 단골 식당이었는데 가격도 싸고 맛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양 목사님은 그곳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셔서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양 목사님이 평소에 공들인 덕을 내가 보게 된 것이다. 식당에 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음식도 더 맛있게 먹게 된다.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친해 두신 덕분에 우리는 그 덕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하지 않은데 예수님이 친하시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니 우리가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오히려 '헤세드(은혜, 자비)'를 경험한다. 이는 예수님 덕분이다.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고 미션을 잘 수행하시면서 공들이신 예수님 덕분이다.

우리는 예수님 덕을 보고 있지만 그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다. 내가 잘나서 잘 사는 것 같이 생각이 든다. 식당의 직원이 나에게 친절한 게 아니라 양 목사님과의 관계를 통해 나에게 친절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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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Blue Marble 2007 West
NASA Blue Marble 2007 West by NASA Goddard Photo and Video 저작자 표시

세상은 스펙을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컴퓨터의 스펙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경력을 말하는 것이다. 경력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경력에 따라 사람이 올라갈 자리가 정해진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그러나 교회만은 그렇게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 무슨 스펙이 필요한가. 교회 지도자가 스펙이 필요한가. 공부를 하기 위해 공부하는 교회 지도자보다 스펙을 화려하기 위해 공부하는 지도자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가 사람을 스펙으로 판단한다면 이미 그것은 교회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목사님은 교회의 장로님이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신앙생활에 열심이고 현재 일하는 곳에서 크리스천답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지 무슨 학교를 나왔고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태도가 옳다고 본다. 스펙에 따라 교회의 리더를 결정하면 교회는 스펙 때문에 무너진다. 결정적으로 이는 예수님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예수님은 스펙에 따라 사람을 뽑지 않았다. 교회 역사를 봐도 그렇다. D.L. 무디의 스펙을 보라. 찰스 스펄전은 어떤가. 스펙만 보면 이들은 설교가나 교회 지도자가 자격이 없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스펙이 화려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아니다. 오늘날 크게 쓰임받고 있는 정식 교육은 고등학교까지가 전부인 그렉 로리 목사는 어떤가. 

스펙이 좋으면 사람들이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런 이유로 추종자가 있더라도 그런 공동체는 콩가루 공동체가 가능성이 크다. 교회는 겸손한 , 순종하는 , 사랑이 풍성한 자를 리더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스펙을 키워주는 신학교에서는 그것을 교육하지 않고 주로 지식을 가르친다. 지식은 중요하고 단체를 이끌어가는 힘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만큼은 지식보다 겸손과 순종과 사랑이 앞서야 한다.

스펙이 좋은 리더들로만 가득한 교회는 자체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스펙이 좋은 사람도 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들이 어우러져 동등한 위치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다.

그런데 세상의 잣대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스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현실이 지금 교회를 휩싸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닌 같다. 요즘 젊은 지도자들 중에는 그것을 깨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희망은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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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나 기독교계 리더가 큰 문제를 일으키면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할 것이지만 명목상의 기독교인이나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은 그런 일이 생기면 성토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기독교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기독교는 이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없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에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그것이 없음이 입증된다고 믿으며 자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

또한 자신의 밥벌이나 권력 유지에 도움이 안 될 경우 기독교인의 비리를 더욱 크게 부르짖고 기독교 박멸에 나선다.

그런데 이 세상에 기독교인들이 다 못된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예수께서 그러한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것을 알리고자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 어떤 종교도 북한에 목숨을 담보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려들지 않는다. 오직 기독교만 그렇다. 이유는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다. 기독교는 썩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숭고하고 고귀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못된 하나님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읽어보면 얼마나 참고 또 참고 인내하고 인내하고 기다린 하나님인지 알게 된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보며 하나님을 느낄 수는 없을까. 우주의 신비를 보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 바다를 덮은 물을 보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을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며 그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볼 수는 없을까. 들판에 나는 곡식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을까.

그런데 예수님만은 사람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어떤 현상을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인간 세상으로 오셨다. 그는 "너희들은 이적을 행할 때만 나를 믿는구나"라고 말했다. 자연 현상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적을 행할 때 잠시 하나님을 믿게 됐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죄된 인간을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위해 특별 사명으로 이 땅에 오셨다
. 인간이 빠지면 예수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의 잘못은 예수님을 가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꺼풀 벗겨보면 기독교인의 잘못이 예수님을 보게 한다. 잘못 없이 완벽하면 예수님이 필요 없다. 죄로 가득하기에 그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하셨다. 사람의 죄를 보며 예수님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의 죄를 보며 예수님을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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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온몸 다해 일을 했고 또 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님을 알면 알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일해도 주님이 없으면 그것은 극히

제한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주의 손길이 없으면 나의 열심은 나를 올리고 나의 명예를

드높이는 시시한 일이 되고 만다.

주의 도우심이 없는 나의 열심은 인간의 눈에는 위대해

보일지 몰라도 그저그런 일일 뿐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역사를 바꾸어도 그것은 큰 우주에 있는

작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이다.

그런데 우주의 창조주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은

인간의 눈에 작아 보일지라도 우주적인 역사를 바꾸는

일이 된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시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주님의 눈에는 우주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2천년 전 일은 위대한 일이 된다.

21세기에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가 함께 하시면 위대한 일이지만

그가 배제되어 있으면 시시한 일이 된다.

난 그걸 보지 못했다.


시시한 학교를 다녀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위대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고

남들이 무시하는 일을 하고 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시한 품삯을 받아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위대한 수입이 되는 것이고

초막에 살고 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궁궐에 사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난 그걸 깨닫지 못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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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장애물[LA중앙일보]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기사입력: 07.20.10 16:26
사람들은 왜 돈 명예 힘을 추구할까. 이러한 질문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던져봤을 법한 것이다. 돈 명예 힘 자체가 대단히 좋다기보다는 그 결과가 너무 달콤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3가지 모두 또는 이 중 하나만 있어도 내 자존감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존경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하면서도 자신을 세우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생을 떠나면서 자신의 책을 절판해달라는 그의 부탁은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소유하고 싶게 만들었다. 사람의 심성에는 낮아지는 자에게 끌리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예수님은 돈 명예 힘을 모두 포기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누린 분이기에 많은 사람이 2000년 동안 추종을 했다. 오늘날 의사가 어떤 사람의 불치병을 고치면 당장 엄청나게 유명해져 거부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이 추종했지만 이것을 명예와 힘으로 전환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날 어떤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이렇게 추종자가 많다면 이를 반드시 자신의 명예와 힘으로 '현금화'하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달콤한 유혹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선택했다. 얼마나 초라한 일인가.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진 이가 자신을 세우기 위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그래서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로 했다.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복음서를 믿고 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세상에 와서 많은 사람을 고치고 가르치고 선교했음을 믿는다. 그의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이 스스로 낮아지시려는 행위임을 믿는다. 그런데 만약 수억 분의 일(그 가능성을 믿지는 않지만)이라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정할지라도 예수님은 내 삶에서 가장 쫓아갈만한 분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돈 명예 힘을 모두 내려놓은 법정스님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받고 '학위'를 내려놓고 선교사가 된 이용규 선교사 이런 분들보다 더욱 큰 것을 내려놓은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인 예수님은 추종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분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의 정신을 망각하고 그의 뜻을 저버리고 살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크리스천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돈 명예 힘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곳이고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누구를 손가락질 하랴.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그렇기에 내 주변에서는 예수님을 따라보고 싶다는 사람이 속속들이 나오지 않고 '예수쟁이가 저것밖에 안 된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자랑하고 내놓기가 쉽지 않다. 나로 인해 가려진 예수님. 그의 추종자들로 인해 가려진 예수님. 그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장애물이 너무 많다. 나는 여러 장애물 중에 작은 하나다. 예수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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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g
    2010/07/30 07: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꼭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깊이 있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

'인생의 바닥'을 치고보니[LA중앙일보]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기사입력: 03.30.10 17:27
'바닥을 쳤다'라는 말이 있다. 그 누구도 바닥을 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닥을 치는 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생에서 바닥을 친 사람은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왜 나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까?' '왜 나는 몸이 아픈 것일까?' '왜 인간에게 고통이 항상 있는 것일까?' 등등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때 '바닥을 친' 상황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인간적으로 볼 때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은 '왜'라는 질문을 던질 여유와 이유가 없다. 오직 물 밑으로 가라앉는 자만이 계속 '왜…왜…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닥을 친 사람들은 그동안 묻어두었던 인생의 질문을 다시 꺼내게 한다.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서 퍼즐을 맞추다 보면 놀랍게 우리는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닥을 친 상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퍼즐 맞추기가 복잡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만큼 멋진 퍼즐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목회자인 김양재 목사는 최근 한 설교에서 "훈련의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우리는 수준 높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바닥을 친 상황이 길수록 우리는 수준 높은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다.

바닥을 친 자는 자기도 모르게 영성이 생긴다. 기독교 성경에서는 요셉이 바로 그런 자였다. 다니엘이 그런 사람이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 인해 형들의 질투로 종으로 팔렸고 나중에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처참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거의 벌레 취급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분명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아낸 후 영성이 깊어졌고 결국 한 나라를 이끄는 유능한 지도자가 됐다.

바닥을 쳤을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어려움이 생길 때 아무 생각 없이 음식 엔터테인먼트 스트레스 해소 등에만 집중하면 우리의 바닥 인생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바닥을 치면 다 잃은 것 같은데 다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 가는 길에 자신이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어 다 잃었지만 그때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온몸에 화상을 입어 의사들이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이지선 씨는 사고를 당하기 전보다 더 깊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결국 인간이 보기에는 바닥이지만 인생을 전체로 봤을 때 신의 관점으로 볼 때 바닥은 복의 바다인 것이다.

필자도 요즘 인생의 바닥을 긁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감사한 사실은 바닥까지 오니 결혼 이후 아내와 최고의 친밀한 관계 아이들과 최고의 절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반전이 있기에 어렵지만 살아볼 만한 게 인생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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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e
    2010/07/01 19: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
    • 밝은터
      2010/07/05 20: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에 감사합니다.

한국인은 교육에 신경 쓰는 민족이다. 이는 좋은 말이다. 교육에 집중하는 민족은 무너져도 회생한다. 문제는 교육에 대한 본질을 모르고 집중하는 데에서 나온다.

교육이
학교에서 받는 점수이고 가게 되는 대학이고 대학에서의 학점이라고 생각하는 극히 피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교육은 어떤 학문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기독교 내에서도 교육을 학위로 등식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학교를 나오면 그것으로 인정이 되는 놀라운 상황에 있다.

그러니 기를 쓰고 좋은 학교에 가려고 하고 졸업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 학위가 있고 없고가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자존감, 상처, 우월감 등의 원인이 된다. 학위로 그룹이 나뉘어지고 학위로 사람의 인생이 결정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을 다녀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인이 교육 자체보다는 점수와 학위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학문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다는 어떻게 점수를 받는지에 치중해 있다. 결과로 학위를 받는 것이 최종 목표가 것이다. 물론 점수와 학위는 공부를 열심히 있도록 하는 촉매역할 또는 동기유발제가 된다.

이게 나쁘다는 아니다. 이게 본질이 같은 느낌이 드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르치는 자들도 점수로 학생들을 움직이려는 위험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다시 본질로 돌아가 생각해 필요가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평생 공부할 기본적인 기술을 갖추도록 것이다. 학교 교육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난 아니다. 어떤 이가 교육에 진정으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학교 졸업 후에도 꾸준히 공부를 하게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공부는 학교 공부로 끝났다면 사람은 교육을 받은 아니라 학위를 받은 것이다. 내가 논문이 더는 보고 싶지 않다면 그는 교육을 받은 아니라 학위를 받은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를 더는 쓰지 않는다면 교육을 받은 아니라 학위를 받은 것이다. 전공 과목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렸다면 그는 교육이 아닌 학위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오늘 점수와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육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Commencement Ceremonies at Emory University in Atlanta with Arnold Schwartzene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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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짝사랑  (2) 201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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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번 정도 칭찬을 듣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확 달라질 것이다. 매일 10번 칭찬을 들으면 일년에 3,600회 정도 듣게 되는 것이고 이는 10년에 36,000회가 된다. 자녀와 20년 동안 매일 생활한다고 가정하면 72,000회의 칭찬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생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다. 존 우든이라는 전설적인 농구 코치는 성공을 "최선을 다한 후 자족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화"라고 했다.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최선을 다한 후 결과가 좋지 않아도 칭찬을 오랫동안 들은 이는 자족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오늘부터 이것을 실천하리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깨달음을 실천할 것이다. 이는 나에 대한 실천이기도 하다. 칭찬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 자녀에게 퍼져나간다. 내가 오늘 칭찬 받을 일이 무엇이었더라? [밝은터]

성진아 너 참 잘생겼구나! (칭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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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dation
    2010/05/16 17: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10번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 스스로 10번 칭찬 할 수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며 실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 밝은터
      2010/05/18 14: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요즘 계속 진행 중인데...제가 좋아지더군요...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는 습관이 길러지면 좋겠습니다...

inside His cross
inside His cross by mon of the loi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소서
나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상실감과 절망감이 매일 나를 따르며
고통과 혼란이 내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아도 새로운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와 고통의 나날과 더 많은 비극을 볼 뿐입니다.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소서.
나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안아주소서.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회복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치유의 길은 멀고 외롭게 보입니다.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소서.
나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내 곁에 서서, 당신의 임재, 당신의 마음,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해주소서,
나의 고통을 알아주소서,
내 고통이 너무 크고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슬픔과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소서
내가 치유될 때까지 올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새로운, 나의 희망, 나의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겠습니다.

"당신의 희망을 내게 주소서"라는 시에서 인용. 작자 미상.
글 인용 출처: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닐 앤더슨)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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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5일자 미주 중앙일보 종교면에 실린 글입니다.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짝사랑의 경험이 있다. 나 역시도 결혼하기 오래 전에 한국에 사는 어떤 여학생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지내면서 좋아하기 시작해 이후 무려 6년 동안이나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좋아했고 미국으로 이민 온 후 2년째 되는 해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모습도 가물가물한 사람을 짝사랑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안다.

8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전화통화도 해보지 못한 여자를 짝사랑함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제대로 대면해보지도 못했고 성경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분을 사랑한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데 그와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고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를 사랑한다. 왜 그를 사랑할까.

그냥 좋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냥 좋은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면 때로는 심장으로 대화할 기회도 있다. 오디오나 비디오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가슴에 대고 속삭이시는 그분의 기운이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녀의 졸업 사진 한 장으로 그리움을 달랬던 것처럼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성경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빨리 보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날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그를 만나는 시간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분은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대신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게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리워하는 분 대신에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분이 원하시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 찌들어 그에 대한 그리움도 식을 때가 있고 그분의 존재마저도 의심할 때가 있다. 과연 나를 정말 기다리는지 정말 계시긴 한지 그에 대한 족적이 믿을만한 것인지 등에 대해 잠시나마 의심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그리워하는 DNA가 심겨진 것 같다. 어릴 적 짝사랑녀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창조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같다. 8년 동안 기다렸던 그녀를 만난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 말을 했더니 아내는 "심장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얻어터지고 싶냐"고 말해 우리는 5분 동안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는 이 말을 나누며 한바탕 천국에서 경험할 폭소로 쏟아지는 엔돌핀에 즐거워했다.

나의 짝사랑은 8년 동안의 기다림이었으니 얼마나 긴 여정이었던가. 이보다 더 긴 기다림 끝에 하늘에서 만날 그분을 보게 될 순간의 느낌은 그것에 100배 1000배 10000배 더 환희에 휩싸일 것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늘에서 만날 그 분은 나보다 앞서 나를 짝사랑했던 분이다. 그리워하며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만나게 될 그를 그리며 2010년에는 더욱 그가 주실 일에 매진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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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ny
    2010/02/04 04: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실감납니다...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 밝은터
      2010/02/05 11: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답글에 감사합니다.


by claude.attard.bezzin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말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인 말이 어디 있을까?

여기서 '성공'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성공'이고 '실패'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실패'이다.

실패는 그러나 한 차원이 높은 세계에서는 '성공'으로 여겨진다. 결국 높은 차원에서는 실패=성공인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은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된다. 즉, 이 경우엔 성공=실패가 되는 것이다.

'실패=성공'이라고 할 때의 실패는 내 양심에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내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이 싫어서,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실패이지만 곧 성공이다.

내 양심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이 박수를 쳐주기 때문에 성공을 했을 때 그 성공은 한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되는 것이다.

결국 고차원에서 실패는 성공인 것이다. 인생의 실패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마치 미친 노인처럼 통일과 예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였다.

예수는 인간의 눈에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한 존재였다. 예수의 제자들마저 잠시 예수를 실패자로 보지 않았던가. 그는 인간에게는 실패였지만 하나님에겐 성공을 거둔 존재였다.

시장 바닥에서 하루 몇 천 원씩 벌었던 할머니가 수천만원을 사회에 기부했을 때 그는 주변 인간에게는 실패자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높은 차원에 있는 분께는 성공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기왕이면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이 아니면 그것은 곧 실패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것은 낮아짐과 순종의 자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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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뭇가지
    2010/01/29 07: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명과 비슷합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왕관이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 밝은터
      2010/01/29 10: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런데..배가 고프면 안될 것 같습니다.
    • 뭇가지
      2010/01/29 22: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삶은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밝은터
      2010/01/31 20: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런 것 같아요...

The Chapel: (채플)
by Max Lucado (
맥스 루케이도), 번역=밝은터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by Fergal O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I am not worthy; I cannot answer you anything, so I will put my hand over my mouth. (Job 40:4)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으로 을 막을 뿐입니다 (욥기 404)

The phrase for the chapel is
Hallowed be thy name. (예배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This phrase is a petition, not a proclamation. A request, not an announcement.(
 구절은 청원이지 선포가 아니다요청이지 발표가 아니다)

Hallowed be your name. We enter the chapel and beseech,
Be hallowed, Lord. Do whatever it takes to be holy in my life. Take your rightful place on the throne. Exalt yourself. Magnify yourself. Glorify yourself. You be Lord, and Ill be quiet.(“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예배당으로 들어가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을 탄원한다. 내 삶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 당신히 하고자 하는 것을 하십시오. 당신의 권좌에 오르시고, 높임을 받고 광대함과 영광을 받으십시오. 저는 그저 잠잠히 있겠습니다)

The word hallowed comes from the word holy, and the word holy means
to separate. The ancestry of the term can be traced back to an ancient word which means to cut. To be holy, then, is to be a cut above the norm, superior, extraordinary. Remember what we learned in the observatory? The Holy One dwells on a different level from the rest of us. What frightens us does not frighten him. What troubles us does not trouble him. (Hallowed라는 단어는 holy에서 나왔다. holy라는 단어의 뜻은 '분리하다'라는 의미다. 고대 언어에서는 '구분하다'라는 의미다. 거룩함은 인간의 규범과 지위의 커트라인 위에 있다. 거룩한 자는 우리와 다른 레벨에 거하시고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그에게 두려움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문제는 그에게 문제가 아니다.)

When you set your sights on our God, you focus on one
a cut above any storm life may bring. (당신이 하나님께 눈을 돌릴 때, 인생의 폭풍우 위의 그분에 집중하게 된다)

Like Job, you find peace in the pain. (
욥처럼 당신은 고통 중에 평화를 찾고)
Like Job, you cover your mouth and sit still. (
욥처럼 입을 막고 잠잠히 있게 된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 46:10). (잠잠하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This verse contains a command with a promise. (
이 구절은 약속과 명령이 함께 있다)
The command? (
명령?)
Be still. (
잠잠하라)
Cover your mouth. (
입을 가리라)
Bend your knees. (
무릎을 꿇어라)
The promise? You will know that I am God. (
약속? 너는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In the midst of your daily storms, make it a point to be still and set your sights on him.(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생각하라)

Let God be God. Let him bathe you in his glory so that both your breath and your troubles are sucked from your soul. Be still. Be quiet. Be open and willing. Then you will know that God is God, and you can
t help but confess, Hallowed be thy name.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 그가 당신을 영광으로 씻게 하고 당신의 숨소리와 문제가 영혼 속에 사라지게 하라. 잠잠하라. 조용하라. 문을 열어라. 뜻을 품어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From The Great House of God
Copyright (Thomas Nelson, 1997) Max Lucado
맥스 루케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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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ant Twins reprise
The Giant Twins reprise by danorbi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일본의 유명한 '머니 카운슬러'인 혼다 켄은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러나 '무턱대고 돈 많이 버는 방법'보다는 행복하게 돈버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는데 어느 날 유대인 대부호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겠습니다.”(혼다 켄)

유대인 대부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사랑, 우정, 즐거움,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게.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려서도 안 되네. 자네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게. 자 지금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자문해 보게. 그리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게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는 소리를 느껴보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네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네. 자네 심장이 번잡스러운 일상생활에 너무 시달려 조용한 소리가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럴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심장 소리가 자네의 인생을 인도하고 눈앞의 길을 열어 펼쳐줄 것이네.”

혼다 켄은 이 대화를 한 후 행복한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강연을 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좀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제가 만나본 대부호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근심과 걱정은 제쳐두었습니다. 감사하면서 걱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혼다 켄의 부에 대한 연구가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행복한 부자가 된다는 것. 굉장히 성경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감사하다보면 부자가 안 되더라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는 보너스처럼 찾아온 것인가 봅니다.

부자들 중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가난하면서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자인 것 같습니다. 특히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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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일꾼이 없어서 걷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문을 향해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아갈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곡식이 많은 것은 아마 큰 밭일 것입니다. 작은 밭에서는 농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곡식의 양이 제한돼 있습니다.

큰 밭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곡식이 자라고 있지만 이를 거둬들이는 일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꾼하면 교회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 분들도 귀한 일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은 작은 밭일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밭을 가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밭을 가꿀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걷어들이는 곡식은 적은 것입니다.

큰 밭을 가꿀 일꾼이 필요한데 큰 밭에서는 추수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큰 밭에서 추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실 겁니다. 교회 안에서는 추수하면 작은 양이라도 확실히 곡식을 얻을 수 있기에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밭에서 땀을 흘릴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큰 밭에서 추수할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청렴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정의를 위해 자기 몫을 하고, 자기를 낮추고, 넉넉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꾼이 많을수록 추수할 곡식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 밭을 가꾸는 일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넉넉한 재산이 있지만 사치를 하지 않고 여윳돈으로 배고프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은 바로 큰 밭을 가꾸는 일꾼입니다. 인종 차별을 당하는 자, 그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서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또 그것이 시스템화 되지 않도록 열심히 땀을 흘리는 자가 큰 밭의 일꾼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일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도 일꾼입니다. 그러나 작은 밭에서 적은 곡식을 얻는 일꾼입니다. 물론 의미있는 일입니다.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꾼은 대부분 이렇게 교회 안에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꾼인데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교회가 일꾼의 개념을 잘못 해석하고 가르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일꾼을 찾으면서 동시에 교회 밖에서도 일꾼을 찾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교회 밖의 큰 밭에서 나오는 곡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썩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아름다운 물이 세상 밖으로 흘리지 못해 썩는 냄새를 풍겼습니다.

물론 세상 밖으로 물을 내보내려면 쉽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꽉 잡은 세상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은 곧바로 구정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정물을 생수로 만들 수 있는 말씀이라는 정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나쁜 성분을 빼어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잠시 구정물과 섞여도 금세 분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마태복음 9:38)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truly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pray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추수할 일꾼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고통을 받고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고 상처받고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의 미완성적인 존재를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쓰십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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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2010/01/05 19:00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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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남준 (생명의말씀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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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각주의 글씨 크기를 바꾸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방법으로 하나하나 각주를 찾아 들어가 원하는 크기로 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저를 만나기 위해 들렀던 청년이 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다가와 마우스를 가지고 몇 번 클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과 몇 초 만에 백여 개의 각주들이 한거번에 다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지혜롭지 못하면 아무리 부지런해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게으름'. p.54)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부지런함과 지혜로움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지혜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책에는 또한 게으른 자의 특성으로 '고집'을 꼽고 있습니다.(p.158-164) 고집과 소신은 다른 것이며 게으른 사람에게서 지독한 고집이 보인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이라면 게으른 자의 성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바삐 움직인다고 부지런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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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like no one is watching, love like you'll never be hurt,sing like no one is listening,and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William Pur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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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will be impossible with God (Luke 1:37)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 분이 연약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난 것은 역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처럼 역사 밖에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가 하신 일은 너무나 놀랍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그분을 믿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마음속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서 기적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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