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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코스텔로
몇 년 전 나는 구약성경의 전도서(Ecclesiastes)에 심취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지혜자'는 인생의 허무함과 모순성을 강조하는데 21세기에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이성주의자와 종교의 근본주의자는 이 모순과 역설을 정리하고자 오랫동안 싸웠다. 그러나 해답을 얻지 못했고 '인생은 모순'임을 처절하게 느꼈다. '인생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됐다.
전도서에 심취했던 당시 한국에서 이회창 씨가 대선 약 40일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인생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고 생각했다. 전도서를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회창 씨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혜자가 말한 역설적 인생을 조금 알게 된 후에 분노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회창 씨가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알면서도 출마 결정을 내린 것을 보면서 그가 옳다고도 옳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LA 총영사관과 연관된 유학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 진출 한국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연관됐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미국에 머물러 있으려면 유학생비자가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유학원에 등록해야만 했다. 스포츠 기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 없었을 것이다. '이걸 보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찰나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선수의 미래와 꿈'을 생각하면 보도하지 말아야 했고 법질서를 위해서는 보도해야 했다. 역설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류 미비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법질서만 생각하면 그들을 신고해야 하지만 그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됐나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미국 프로 스포츠가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채 돌아가고 있음을 모두 알지만 여전히 필드에 서 있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소개하는 것 역시 역설적 상황이다. ‘슈퍼에이전트’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가 메이저리그를 망쳐놓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의 말 한마디가 크게 보도되는 것 또한 인생의 모순이다. '망쳐놓는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선수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부를 갈구하는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모순적이다.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는 1996년 발표 앨범인 '이 모든 허무한 아름다움(All This Useless Beauty)'에서 '허무한 아름다움'을 쫓는 인생을 노래했다. '허무한 아름다움'이란 모순적인 표현이다. 허무하지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인생이라고 코스텔로는 노래한다.
정말 착하게 사는 것 같은데 고통하고, 정말 나쁜 짓을 다하는 것 같은데 평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인생의 모순이다. 그런데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가 규정하나. 고통과 평안의 의미는 누가 결정하나. 이것 역시 해답이 없다. 인생에는 모순이 기본적으로 있고 그 안에 뜻과 비전을 찾는 게 삶임을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된다.
'적과의 동침' '원수를 사랑하라'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표현은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피해갈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모순과 역설을 논리와 합리로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야구를 '세이버메트릭스' 하나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 논리로 해석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기에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것 같으면서도 가치가 있는 게 인생이다. 이 표현 자체도 역설적이다.
모든 게 불공평하고 모든 게 이해되지 않지만 의미를 찾으면서 인생길을 걸어갈 때 딱 하나 공평한 게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는 모순이 없기에 어떻게 사는 것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놓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모순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살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의 결정판이다. 이성주의와 근본주의가 낳은 부정적인 결과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 아닌가. 죽음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게 또한 인생이다. 나는 오늘도 모순되게 산다. 역설을 품고 산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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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There is no life - no life without its hunger;
Each restless heart beats so imperfectly;
But when you come and I am filled with wonder,
Sometimes, I think I glimpse eternity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And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내가 힘들어 내 영혼이 너무 지칠 때에
괴로움이 밀려와 내 마음이 무거울 때에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고요히 이 곳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에 나는 강해지며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에 나는 강해지며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저마다 굶주림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저마다 불안한 가슴은 불완전하게 고동칩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셔서 내 가슴이 경이로 가득찰 때에
때때로, 나는 영원을 살짝 엿본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에 나는 강해지며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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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ncipation statue at Lincoln Park by dbking ![]()
7년이 지나면 빚을 탕감해주고, 7년이 지나면 노예를 풀어주는 내용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성서 구약에 있는 신명기 15장에는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7년이 지나면 빚을 탕감해줄 것을 모세가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7년이 지나면 노예를 풀어주랍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빚을 탕감받는 자와 노예에서 풀려난 자는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빚을 탕감해주는 자 노예를 풀어주는 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입니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빚이 탕감되고 돈 때문에 묶인 자에서 풀려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평생 동안 싸였던 죄의 빚, 평생토록 마귀의 노예가 되어 살았던 저는 예수를 믿음으로 빚이 탕감됐고 노예생활을 청산했습니다.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이런 명령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5장에 보면 이런 자유는 순종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빚진 자와 노예로 묶인 자를 풀어줍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빚진 자와 노예로 묶인 자를 자유케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자유구나! 메시지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자유입니다. 자유하게 된 자는 나의 노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순종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7년 있으면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에서 풀려나게 하라는 명령에 이스라엘 민족이 순종하지 않으면 자유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순종하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있는데 왠지 아이가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그것은 부모가 순종하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평생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자유인이 되었는데도 그의 아버지로 인해 묶여 살았습니다. 흑인인게 싫었고, 아버지와 닮는 게 실었습니다. 상처의 노예가 되어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보다 높으면서 뛰어난 누구에게(예를 들어, 하나님) 순종했다면 마이클은 노예로 살다가 자유해졌을 것입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나는군요. 이 여자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바람둥이 남편이 있었는데 아내가 처음에는 너무 속상해하다가 예수 안에서 자유해지니까, 오히려 남편이 외도를 끝내고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서 완전히 자유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니까,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자유는 묶인 자가 혼자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순종이 필요한 일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백성들의 자유를 위해 산상수훈(예수님의 산에서의 설교)에 순종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노예제도는 링컨과 그의 동료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제도를 없애려고 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 순종하면 자식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방치해두라는 말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을 거두라는 말입니다.
자유는 영어로 Freedom입니다. Free(자유로운)와 Dom(덤)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이미 예수를 보내셔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이 덤(보너스)이 되었습니다.
자유를 얻은 우리에게 돕는 영을 덤으로 주신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모세의 설교로 말하자면 노예를 풀어주면서 덤으로 앞으로 살 수 있는 생활비를 노예에게 주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15장에 이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해방을 공짜로 주시고 살길을 덤까지 얹어서 주시는 풍성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자유는 순종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유는 덤이 보태어졌다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자유라는 것이 신명기 15장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누군가가 노예의 상태에 있다면 제3자가 순종하며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합니다. 순종입니다.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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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덕규의 '가시나무'를 함께 부르던 시간,
내 앞에 아른거리는 아내의 얼굴,
어렵게 자라 나에게 사랑을 그토록 받고 싶어했던
그녀에게 나는 사랑을 주기는커녕 아픔만 주었습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 추스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를 사랑해줘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하는
아내의 갈증과도 같은 바람이 들려왔습니다.
오늘은 아내에게 긴 긴 사연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무명 네티즌의 글]
가시나무는 가시 돋친 나무를 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시나무로 내가 사랑하는 당신,
나를 사랑하는 님이 쉴 수 없다고 이 노래는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시를 뽑아내지 못하면 함께 어울려
살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시를 뽑아내야 합니다.
헛된 바람의 가시,
시기하는 마음의 가시,
미워하는 가시.
이기적인 마음의 가시,
내 힘으로 가시 정리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해보세요....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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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1절-10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창조의 질서에서 두 단계 내려온 예수님
시편 8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son of man)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천사-인간-동식물의 순서인 것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를 본다면 사탄은 천사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며 비판을 합니다.
음악 이야기를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천사였습니다. 루시퍼는 이 음악을 하나님을 찬미하는 게 아닌 반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음악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그 음악이 오히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교회 음악이 아닌데도 감동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문세 씨 노래를 좋아하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 상념에 휩싸여 과거를 회상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적인 무엇인가를 느낄 때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는 순전히 음악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 자체는 신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
이문세 / 국내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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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타락한 천사가 이를 왜곡해서 인간에게 전달을 합니다. 하나님을 가리게 됩니다. 바로 이 가리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음악이 순전히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영을 가리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나 훌륭한 사람으로 봤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깨닫게 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사단은 오히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군대 사단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들보다 높기 때문에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사단의 무리를 쫓아냅니다.
하나님은 무려 두 단계나 존재의 레벨을 낮추며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는 것을 택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홍수로 뒤엎어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세상의 질고를 짊어졌던 것입니다. 홍수로 뒤엎어버리면 더 간단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고 자신들을 세상적으로 ‘뜨게’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옆에서 지내면서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사단을 쫓아내면서 그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사단을 쫓아내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그러한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그가 왜 십자가를 짊어지고 숨을 거뒀는지 아시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믿어버리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믿어지십니까? 어쩌면 우리는 마가복음 4장41절에 나오는 “이분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바람을 멈추게 하나?”라는 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독
출연
상세보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회 활동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마음이 믿겨질 때 비로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한 후에 이번 주 주일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Thinking of Grace
교회도 대형 교회여야 성공한 교회라고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큰 교회를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의 큰 가족이니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해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100명 남짓한 현재의 식구도 제대로 못 돌보기 때문이다. 새벽에는 한 가정 한 가정씩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고, 아침엔 등교 시간까지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엄마 없는 아이들 전화로 깨워 주고, 오늘은 다솜이 생일이고 내일은 건용이 졸업식이고…. 나는 항상 그들로 정신없이 바쁜 것을 기뻐한다. 성도들도 아이가 감기만 들어도, 치과에 갈 때도, 밖에 나가 놀다가 조금만 늦어도 나에게 전화를 한다. <유정옥,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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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7장7절-25절
오직 예수라는 말의 의미
‘오직 예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들으면 거북한 표현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을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 같습니다. ‘오직 예수’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낸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문화적 물질주의(Cultural Materialism)로 인해 물질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위로를 찾기 힘들고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왜 소망이냐 하면 자신의 엄청난 권한(신의 아들)을 내려놓고 십자가 처형을 당할 정도로 우리를 생각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주의로 판단한다면 그의 행동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비효율에서 나옵니다. 효율적이지 않는데 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일은 비효율 그 자체입니다. 기독교 선교도 효율적이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왜 할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효율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계산기 두들기며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비효율을 감당하고 자식을 사랑합니다.
수잔 보일의 비효율성
비효율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수잔 보일입니다. 브리티시 탈렌트 쇼에 출연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40대 가정주부가 엄청난 노래실력으로 전 세계 1억 명의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준 인물입니다. 그가 노래를 배우기 위해 투자한 것들은 과연 효율일까요? 비효율일까요?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 참….” 그러면서 비웃었을 것입니다. 비효율적인데 계속 밀어부치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은 효율을 강조합니다. 율법은 효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비효율입니다. 예수님은 비효율입니다. 사랑 하기에 비효율을 선택한 것입니다. 효율이 고개를 들고 말합니다. “그건 아니지…” 사랑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닙니다. 사랑은 상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상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효율이 필요합니다. 율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 비효율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해야 합니다. 그 비효율의 대표주자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과정의 비효율성
저는 수잔 보일의 대성공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가 그렇게 되는 길에서 보여준 과정을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분명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그는 비웃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비효율적이면서 미련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저렇게 할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효율의 덫에 묶여 있을 때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비효율적이면서 무한한 사랑을 보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입니다.
적용
내가 하는 일들은 모두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수잔 보일처럼 세상이 알아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일들을 하면서 예수님의 비효율성을 배운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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