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9장과 30장을 읽어보면 신명기 전체에서 흐르는 주제인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최근 제 두 자녀와 신명기 30장에 대해 나눔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네 온 마음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물어보았습니다. 역시 재미나게 노는 것이었고, 그 중에 비디오 게임이 있었습니다. 공놀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한다고 했습니다.

Nico
Nico by Ian Muttoo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이고자 하는 것은 나를 좀 봐라!” “나에게 순종 좀 해라!” “내가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입니다.

우리가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가 그 정도로 정성을 다해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 월드컵이 시작하면 온 나라가 그 경기에 집중합니다. 밤 잠을 설치고 경기를 봅니다. 온 맘을 다해 한국을 응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을 해봅니다.

Goal!
Goal! by gabrielson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꼬박꼬박 일은 하고 TV도 보고 다른 일은 열심을 다하는 데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더 알려는 노력은 뒷전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 남는 시간과 푼돈을 받는 분으로 착각을 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역시 그를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 없이 머리의 노력만으로는 그를 순종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신명기 294절을 보면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남은 단순히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의 섭리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를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네이버 뉴스 카데고리 ..
현재 네이버 뉴스 카데고리 .. by Seokzzang Yu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포털 사이트에는 매순간 검색어 순위가 공개됩니다. 검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인물에 대한 관심입니다. 관심을 가져야 그 인물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너무 좋으면 만나러 가려고 하겠죠. 골수팬이면 팬클럽에도 가입하겠죠.

하나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먼저, 궁금함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어떤 분인지 알아봐야 하고, 그를 만나고자 노력을 해야 하고, 그가 만나주기를 바라는 게 필요합니다.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임(교회 등)에 가입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왜 창조주는 인간과 계속 관계를 맺고 가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부모의 마음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자녀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때 더욱 기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는 뛰어난 자녀를 원하는 게 아니라 순종하고 사랑하는 자녀를 원합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부모는 기쁨을 누립니다. 부모가 기쁘면 자녀도 기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삶을 부모와 자식간의 삶에서 철저하게 경험하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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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drops - S5isMacroDrops_1
Raindrops - S5isMacroDrops_1 by Daniel Y. Go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신명기 17장을 잘못 해석할 경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모세는 17장에서 달, 태양 등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는 증인 두세 사람이 있을 경우 돌로 쳐서 죽여도 된다고 했습니다.

무속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여전히 달, 태양신을 섬깁니다. 지금도 그런 분들이 전 세계에 있습니다. 그들을 돌려 쳐서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174절에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이스라엘 안에서 발생하면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나 자주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는 정말 배은망덕한 일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확실한 민족이 다른 신을 섬긴다면 이것이야말로 커다란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행위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죄인이 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죽은 것입니다. 정작 죽어야 할 자는 우리인데 그가 대신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죄를 짓습니다. 실수는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도 이제 지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00년 동안 얼마나 인내하시고 기다리셨습니까.

그래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가 목숨이 끊길 떄까지 기다리십니다. 그의 품에 돌아오기를

인간은 잘 지내다가도 욕 한 번 하면 등을 돌립니다. 저와 아주 친한 사람이 있는데 제가 그 사람에 대해 뒷담화했다든가 앞에서 욕을 했다면 그 사람과 저는 원수가 됩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우리는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얼마나 불순종합니까. 얼마나 무시합니까. 은근히 하나님을 동냥하는 분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모든 수모에도 그는 우리를 기다린다는 게 기적인 것 같습니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때 가상의 총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거나 사물을 파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게임이니까 우리는 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창조주가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주를 만드신 이가 작은 행성의 아주 작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대신 총에 맞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게임 안으로 들어가서 대신 총에 맞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인 것입니다.

저는 어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 잠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은혜를 그렇게 체험했으면서도 육의 일이 지배하니까 영의 안식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런 저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을 보내시어 저를 안위하십니다.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한 나를 하나님은 인내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는 은혜가 감사하면서도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달라고 구하기가 죄송할 때가 있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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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C - New York Public Library Main Building: McGraw Rotunda - The Story of the Recorded Word - Moses with the Tablets of Law
NYC - New York Public Library Main Building: McGraw Rotunda - The Story of the Recorded Word - Moses with the Tablets of Law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하나님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오해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1013절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데 이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신명기 전체 내용을 보면 그의 계명과 명령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지침을 줄 때 부모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녀의 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때로는 부모의 이익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 결국에는 자녀에 해롭게 됩니다.

저희는 아이들에게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이는 부모를 위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만약 일요일부터 목요일 사이에 몰래 게임을 했다면 부모 마음은 어떨까요? 부모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만 속이 상합니다. 아이들이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침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부모는 순종을 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계속 몰래 게임을 한다면 부모가 할 일은 게임기를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결정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지침을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지침임을 깨닫는다면 절제심이 생길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생각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양쪽 모두 무감각해진다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명을 주신 분이 아닙니다
. 그는 자녀에게 이로운 계명을 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합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킨다고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위한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종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율법은 지키는 게 아니라 삶 속에 파고들게 됩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죄많은 인간이기에 율법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폐가 되는 게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율법을 안 주셨으면 어땠을까? 인간이 불행해집니다. 무질서 속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 됩니다. 이는 인간에게 불행입니다. 질서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많은 민족이 율법을 무시하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은혜마저 무시했습니다. 게임 중독자들의 삶이 파괴됨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이익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온맘과 정성 다해 사랑하면 그것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힘이 생기고 그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율법은 곧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율법은 무서운 잣대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관점에서 율법을 본다면 우리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오히려 질서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사랑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비디오 게임에 대한 규칙을 세우는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규칙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아이가 알았다면 그것은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는 중요한 일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규칙 자체를 너무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규칙에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율법이 다른 도덕법이나 계명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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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그나
    2009/09/28 11: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자녀를 위한 지침을 내릴 때 사랑의 마음인지 이기적인 마음인지 돌아봐야 하겠다. 또한 지침을 유지하려고 할 때 이것이 사랑인지 이기적인 마음인지 생각해야겠다. 때로는 지침이 사랑보다 앞설 때가 있다.
  2. 하늘빛
    2010/02/23 02:3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봄맞이성경학교에서 십계명을 주제로 합니다.
    이글을 읽는순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기에 딱 맞는 이야기구나 느꼈습니다
    • 밝은터
      2010/02/25 11:5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격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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