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중 'brainwash'의 사전적인 의미는 '세뇌'. '세뇌'의 의미를 찾아보니 '본디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개조한다'라고 나와 있다. 몇 년 전에 CNN닷컴의 톱기사로 '어린이 용병'이라는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전 세계 어린이 용병(child soldier) 25만 명에 이른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도덕과 가치관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이에게 '총으로 적을 죽이라'는 세뇌를 하면 그들은 어른보다 더 깔끔하게(?) 상대를 제거한다고 CNN은 보도했다. 어린이의 나이는 8세부터 10대 초중반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2007년 한국의 유명 탤런트 정다빈양이 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가수 유니가 자살한 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은 두 배였다. 이들은 왜 자살을 했을까. '세뇌'의 영향인 것 같다. 그들은 이 세상의 '세뇌'로 인해 '본디 가지고 있던 생각'이 깨끗이 청소(wash)됐고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했다. 바로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사상이다. 지금 돈을 모아놓아야 미래가 안정된다는 그런 사상이다. 그들은 그러한 사상에 '세뇌'되어 불안해했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비난에 민감했고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

 

 영화 배우 안성기씨는 당시 일간지 칼럼에서 "인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게 연예인의 운명이지만 모든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연예인 후배들에게 강조한 바 있다.

 

소위 '성공'한 자만이 인정을 받는 연예계에서 조금만 인기가 떨어져도 불안해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계도 비슷하다. 인기있던 선수가 인기가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포츠 스타들 중 팬들의 박수가 사라지면 공허한 마음에 자살하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 선수는 상당수다. 

 

 정다빈, 유니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웠던 사실은 이 두 사람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정다빈은 매니저 말을 빌리면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는 '절실한' 신자 정다빈은 교회에서 '성공에 대한 세뇌'를 재확인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요즘 교회를 가보면 대부분(그렇지 않은 교회도 물론 있다)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게 신의 축복이라고 한다. 물론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물질적 축복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돼 신자들은 '물질적 성공을 다짐하며(!)' 교회 문을 나선다. 정다빈은 어쩌면 그 물질적 축복 메시지에 재무장되어 교회 문을 나섰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교회에서 청빈과 작은 것에도 감사한 삶을 이야기했지만 본인이 워낙 '성공 신드롬'에 세뇌되어 그런 메시지는 들어도 들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설교 메시지가 '성공 신드롬' 메시지를 밀어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고전 끝에 축복을 받은 이들을 여러 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이고 대부분의 인물은 어려움을 견디고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 그때만 조금 견뎠더라면 좋았을텐데 견딤의 미학은 교회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기독교 성서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축복의 신학보다 인내의 신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견디면 반드시 축복은 기다린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옆에 신문 또는 잡지가 있다면 한 번 열어보자. 모두 소위 말해 성공한 자의 성공 또는 실패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결국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성공한 유명인의 실패담이다. 심지어 신문의 종교면에도 성공한(?) 자의 스토리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세상 사람 대부분이 성공해야 한다는 '세뇌'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세뇌되어야 하는가. 오늘 하루 우리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하며 세뇌를 당해야 하는가. 어떤 세뇌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 각자의 선택이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분명히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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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사실 우리는 핵심적인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바로 '네 몸(yourself)'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달라진다.

아주 유명한 스포츠 라디오 진행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학대한 사람(위 사진)이다. 나는 그를 LA 다저스 구장과 에인절스 구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로 놀랐다. 몸무게가 400파운드가 넘는 것 같았고 걷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이었다.

아주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몸을 학대한 그 사람은 라디오에서 공개적으로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 사용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현실의 기쁨과 성취를 위해 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논조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의 그런 발언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실천이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이웃도 나처럼 살기를 기대하며 '사랑'을 실천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기준과 관점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글렌 스태슨은 "사랑은 상호적이지 결코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결국 내 이웃과 내 몸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상호적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몇 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약물 이슈를 보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생각난 적이 있다. 릭 앤킬이라는 야구 선수가 수년 전 약물을 복용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는 미 언론의 조롱이 시작됐다. 앤킬은 심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야구계를 떠나 있다가 돌아온 선수였다.

나의 삶을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라 앤킬의 이슈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1 인생에서 돈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약물을 잘 활용하면 몇 백만 달러, 몇 천만 달러를 벌 수 있는데..."
#2 약물 복용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 "그거 절대하면 안 돼. 몸 망치고 인생 망친다. 선수들이 너무 걱정돼..."
#3 현재 마약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자: "그게 뭐 어때서, 쿨 하잖아. 잘하고 있어!"
#4 예수님: "네 죄가 없거들랑 돌을 던져라. 그는 100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다." 

 
이들은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내 몸을 내 생각을 내 삶을 어디에 맡기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랑의 표현 방식은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사랑'을 논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이 이상적인 도덕의 완성이라고 착각을 하는 점이다. 사랑은 어려움에 빠진 자를 난관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이웃의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게 어려움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졌던 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사랑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결'(confrontation)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게 바로 사랑의 묘미다. 대결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쉬운 방법(그 자체로 이해하는 척 또는 무관심)을 선택한다. '대결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대결'을 하는 사람을 사랑이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잘못된 사랑의 관점 때문에 오늘날 '사랑(?)'은 연약한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약물 이슈를 보면서 나는 나(myself)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약물 이용 선수를 바라보며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5차원 전면 교육(원동연 박사)'이라는 것을 스스로 도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진작 약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내놓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완벽한 시스템'은 있을 수 없지만 '돕는 시스템'은 만들 수 있다. 나의 사랑 방식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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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e.attard.bezzin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말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인 말이 어디 있을까?

여기서 '성공'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성공'이고 '실패'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실패'이다.

실패는 그러나 한 차원이 높은 세계에서는 '성공'으로 여겨진다. 결국 높은 차원에서는 실패=성공인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은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된다. 즉, 이 경우엔 성공=실패가 되는 것이다.

'실패=성공'이라고 할 때의 실패는 내 양심에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내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이 싫어서,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실패이지만 곧 성공이다.

내 양심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이 박수를 쳐주기 때문에 성공을 했을 때 그 성공은 한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되는 것이다.

결국 고차원에서 실패는 성공인 것이다. 인생의 실패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마치 미친 노인처럼 통일과 예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였다.

예수는 인간의 눈에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한 존재였다. 예수의 제자들마저 잠시 예수를 실패자로 보지 않았던가. 그는 인간에게는 실패였지만 하나님에겐 성공을 거둔 존재였다.

시장 바닥에서 하루 몇 천 원씩 벌었던 할머니가 수천만원을 사회에 기부했을 때 그는 주변 인간에게는 실패자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높은 차원에 있는 분께는 성공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기왕이면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이 아니면 그것은 곧 실패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것은 낮아짐과 순종의 자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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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뭇가지
    2010/01/29 07: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명과 비슷합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왕관이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 밝은터
      2010/01/29 10: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런데..배가 고프면 안될 것 같습니다.
    • 뭇가지
      2010/01/29 22:09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삶은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밝은터
      2010/01/31 20: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런 것 같아요...

The Chapel: (채플)
by Max Lucado (
맥스 루케이도), 번역=밝은터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by Fergal O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I am not worthy; I cannot answer you anything, so I will put my hand over my mouth. (Job 40:4)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으로 을 막을 뿐입니다 (욥기 404)

The phrase for the chapel is
Hallowed be thy name. (예배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This phrase is a petition, not a proclamation. A request, not an announcement.(
 구절은 청원이지 선포가 아니다요청이지 발표가 아니다)

Hallowed be your name. We enter the chapel and beseech,
Be hallowed, Lord. Do whatever it takes to be holy in my life. Take your rightful place on the throne. Exalt yourself. Magnify yourself. Glorify yourself. You be Lord, and Ill be quiet.(“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예배당으로 들어가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을 탄원한다. 내 삶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 당신히 하고자 하는 것을 하십시오. 당신의 권좌에 오르시고, 높임을 받고 광대함과 영광을 받으십시오. 저는 그저 잠잠히 있겠습니다)

The word hallowed comes from the word holy, and the word holy means
to separate. The ancestry of the term can be traced back to an ancient word which means to cut. To be holy, then, is to be a cut above the norm, superior, extraordinary. Remember what we learned in the observatory? The Holy One dwells on a different level from the rest of us. What frightens us does not frighten him. What troubles us does not trouble him. (Hallowed라는 단어는 holy에서 나왔다. holy라는 단어의 뜻은 '분리하다'라는 의미다. 고대 언어에서는 '구분하다'라는 의미다. 거룩함은 인간의 규범과 지위의 커트라인 위에 있다. 거룩한 자는 우리와 다른 레벨에 거하시고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그에게 두려움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문제는 그에게 문제가 아니다.)

When you set your sights on our God, you focus on one
a cut above any storm life may bring. (당신이 하나님께 눈을 돌릴 때, 인생의 폭풍우 위의 그분에 집중하게 된다)

Like Job, you find peace in the pain. (
욥처럼 당신은 고통 중에 평화를 찾고)
Like Job, you cover your mouth and sit still. (
욥처럼 입을 막고 잠잠히 있게 된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 46:10). (잠잠하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This verse contains a command with a promise. (
이 구절은 약속과 명령이 함께 있다)
The command? (
명령?)
Be still. (
잠잠하라)
Cover your mouth. (
입을 가리라)
Bend your knees. (
무릎을 꿇어라)
The promise? You will know that I am God. (
약속? 너는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In the midst of your daily storms, make it a point to be still and set your sights on him.(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생각하라)

Let God be God. Let him bathe you in his glory so that both your breath and your troubles are sucked from your soul. Be still. Be quiet. Be open and willing. Then you will know that God is God, and you can
t help but confess, Hallowed be thy name.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 그가 당신을 영광으로 씻게 하고 당신의 숨소리와 문제가 영혼 속에 사라지게 하라. 잠잠하라. 조용하라. 문을 열어라. 뜻을 품어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From The Great House of God
Copyright (Thomas Nelson, 1997) Max Lucado
맥스 루케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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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ant Twins reprise
The Giant Twins reprise by danorbi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일본의 유명한 '머니 카운슬러'인 혼다 켄은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러나 '무턱대고 돈 많이 버는 방법'보다는 행복하게 돈버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는데 어느 날 유대인 대부호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겠습니다.”(혼다 켄)

유대인 대부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사랑, 우정, 즐거움,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게.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려서도 안 되네. 자네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게. 자 지금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자문해 보게. 그리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게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는 소리를 느껴보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네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네. 자네 심장이 번잡스러운 일상생활에 너무 시달려 조용한 소리가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럴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심장 소리가 자네의 인생을 인도하고 눈앞의 길을 열어 펼쳐줄 것이네.”

혼다 켄은 이 대화를 한 후 행복한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강연을 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좀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제가 만나본 대부호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근심과 걱정은 제쳐두었습니다. 감사하면서 걱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혼다 켄의 부에 대한 연구가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행복한 부자가 된다는 것. 굉장히 성경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감사하다보면 부자가 안 되더라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는 보너스처럼 찾아온 것인가 봅니다.

부자들 중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가난하면서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자인 것 같습니다. 특히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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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Fans 2006 WBC
Korean Fans 2006 WBC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화제의 이벤트가 됐다. WBC는 야구 월드컵이다. WBC는 축구 월드컵보다 전 세계적인 관심도와 집중력이 덜한 편이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나의 지인은 이 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한국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미국에 왔을 정도다.

WBC는 왜 한국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가 생각해 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야구가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에, 몇 달 동안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일본과 맞대결이 자주 있기 때문에 등등 여러 이유가 있다.

나는 WBC와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을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스토리텔링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이야기하기’이다. 이야기를 하는 자를 스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과 WBC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WBC에는 단순히 승패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승패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있다. ‘봉중근 의사와 이치로 히로부미’와 같은 말이 생산되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WBC를 둘러싼 이야기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꺼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회 중에 방문했던 교회에서는 설교자가 설교 중에 WBC 이야기를 하며 ‘한국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는데 청중들은 이 말에 잠시 웃을 기회가 있었다. 이처럼 WBC에는 공통으로 관심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들이 더욱 집중을 하는 것이다.

축구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공통된 관심사가 우리를 기쁘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도 2세인 자녀와 WBC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아들은 WBC에 대해 궁금한 게 많고 아빠는 이에 대해 답변해주기 바쁘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관심이 집중되고 대화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WBC에 스토리 텔링이 있기에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의 관심은 집중된다.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교회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레너드 스윗 (좋은씨앗, 2002년)
상세보기


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윗은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경험을 조직화한다”고 덧붙였다. 

WBC와 스윗이 한 말을 연관짓는다면 세계 야구 대회에서의 경험이 이야기로 펼쳐질 때 이는 종교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야구가 좋은 게 아니라 어떤 종교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두한다고 볼 수 있다. ‘봉중근 의사와 이치로 이로부미’라는 말은 바로 어떤 경험이 이야기로 풀어내어진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듣고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배경화면용 소녀시대 포스터?!
배경화면용 소녀시대 포스터?!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2009년 초반 한국에서 불었던 또 다른 대중문화적 현상은 바로 소녀시대와 최양락 신드롬이었다. 소녀시대는 9명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성들로 구성된 음악그룹으로 그들이 부른 ‘Gee’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왜 소녀시대와 Gee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까. WBC처럼 여러 이유가 있다.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귀엽고, 노래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아내는 “TV에 자주 나오니까 그렇지”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다 맞는 말이다.

이를 스토리 텔링의 관점으로 본다면 흥미롭다. 9명의 ‘소녀’들은 각자가 다양한 경험이 있다. 그들이 토크쇼나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지겹지가 않고 신선하다. 9명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욱 신선하게 들린다.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기에 이들은 더욱 자주 TV출연을 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 거칠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솔직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써먹으면 금세 겹지만 소녀시대는 새로운 이야기를 연일 쏟아내기에 TV만 켜도 소녀시대가 나온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거의 신드롬을 일으키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최양락 / 개그맨
출생 1962년 5월 20일
신체 키183cm, 체중80kg
팬카페
상세보기

최양락이라는 80-90년대에 인기 있었던 개그맨이 최근 ‘황제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복귀하면서 놀라운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그의 ‘스토리 텔링’이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그가 쏟아낸 옛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성경도 사실 이야기로 구성됐다. 도덕경전이 아니라 피조물의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했던 것들은 주로 스토리텔링이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그의 뜻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인간의 근본을 다루는 스토리텔링이었기에 그의 복음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는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다.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를 어떤 관점으로 어떤 정착지로 이끌고 갈 것인가는 스토리텔러와 청중의 마음과 뜻에 달려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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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dow7
    2010/01/2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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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종교적인 게 아니고, 종교가 사람을 이끄는 힘을 가지게 된 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겠죠.
    • 밝은터
      2010/01/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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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습니다. 위 글이 하신 내용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최근 크리스천 센추리라는 기독교 잡지에 듀크대 신학대의 학장인 L. 그레고리 존스라는 분이 '믿음이 중요하다(Faith matters)'라는 제목으로 기고해 눈길을 끌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 목회자는 정부 라이센스가 필요 없지만 안수를 받으려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수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기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얼마 동안은 목회학 석사가 표준이 되었다. 최근 들어 그러한 기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요즘은 그러한 학력 학위보다는 목회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를 더 보는 것 같다. "

실제 미국 개신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가 없지만 훌륭히 목회를 수행하는 목회자들이 눈에 띈다. 시카고에 있는 세계적인 교회인 윌로우 크릭의 담임 목사인 빌 하이벨스는 트리니티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학사(BA) 학위만을 받은 목회자다.

세계적인 기독교 작가이자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해외 선교사로 나가려면 필수로 밟아야 하는 석사과정 2년만을 마친 후 다른 신적 부르심이 있어 전통 목회를 하게 됐다. 크리스채니티 투데이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의해 미국 최고의 목사.설교가로 선정된 루케이도 목사의 성경해석과 세상과의 접목은 탁월하다.

미국 내에서 10대 대형 교회 중 하나인 하베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쉽의 그렉 로리 담임 목사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정식 교육 학위의 전부다. 그는 19세에 성경 공부를 인도한 후 30명 전원의 삶이 변하는 체험을 한 후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는 수십 년 후에 남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중 하나가 됐다.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조엘 오스틴 목사(레이크우드 교회)는 오럴 로버츠 대학에서 단 한 학기 강의를 들은 것이 그의 종교 교육의 전부다. 그는 한 학기를 마친 후 학교를 떠나 부친이 사역하던 레이크우드 교회 TV 제작실에서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일을 했고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교인들의 뜻에 따라 담임목사직을 승계했다.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의 리더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내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에 들어갔던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신학교 학력이 전무하다.

이 글은 목회학 석사가 쓸 데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학위는 앞으로도 목회자에 권위를 실어줄 것이다. 듀크대의 존스 학장도 "목회학 석사는 앞으로 적어도 25년은 유효할 것"이라고 했다. 존스 학장은 그럼에도 "목회학 석사는 MBA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해지고 있다. MBA는 많은 사람을 잘 훈련시켰다. 회사에서 MBA 공부를 한 사람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요즘 MBA는 필수 학위가 아니다. 목회학 석사는 MBA와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요즘 교회 구성원들은 목회자의 좋은 학력을 원하는 게 아니라 영성이 뿌리가 되어 있는 효과적인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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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일꾼이 없어서 걷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문을 향해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아갈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곡식이 많은 것은 아마 큰 밭일 것입니다. 작은 밭에서는 농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곡식의 양이 제한돼 있습니다.

큰 밭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곡식이 자라고 있지만 이를 거둬들이는 일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꾼하면 교회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 분들도 귀한 일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은 작은 밭일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밭을 가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밭을 가꿀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걷어들이는 곡식은 적은 것입니다.

큰 밭을 가꿀 일꾼이 필요한데 큰 밭에서는 추수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큰 밭에서 추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실 겁니다. 교회 안에서는 추수하면 작은 양이라도 확실히 곡식을 얻을 수 있기에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밭에서 땀을 흘릴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큰 밭에서 추수할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청렴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정의를 위해 자기 몫을 하고, 자기를 낮추고, 넉넉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꾼이 많을수록 추수할 곡식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 밭을 가꾸는 일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넉넉한 재산이 있지만 사치를 하지 않고 여윳돈으로 배고프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은 바로 큰 밭을 가꾸는 일꾼입니다. 인종 차별을 당하는 자, 그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서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또 그것이 시스템화 되지 않도록 열심히 땀을 흘리는 자가 큰 밭의 일꾼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일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도 일꾼입니다. 그러나 작은 밭에서 적은 곡식을 얻는 일꾼입니다. 물론 의미있는 일입니다.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꾼은 대부분 이렇게 교회 안에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꾼인데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교회가 일꾼의 개념을 잘못 해석하고 가르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일꾼을 찾으면서 동시에 교회 밖에서도 일꾼을 찾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교회 밖의 큰 밭에서 나오는 곡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썩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아름다운 물이 세상 밖으로 흘리지 못해 썩는 냄새를 풍겼습니다.

물론 세상 밖으로 물을 내보내려면 쉽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꽉 잡은 세상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은 곧바로 구정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정물을 생수로 만들 수 있는 말씀이라는 정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나쁜 성분을 빼어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잠시 구정물과 섞여도 금세 분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마태복음 9:38)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truly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pray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추수할 일꾼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고통을 받고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고 상처받고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의 미완성적인 존재를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쓰십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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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김홍식 특파원 diong@joynews24.com   
 
메이저리그 스타덤을 눈 앞에 둔 최고의 유망주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은퇴한 이유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점은 더욱 놀랍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그랜트 데스미는 23일 빌리 빈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쉬웠지만 오클랜드도 이미 그의 신앙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기를 생각하면 일반인으로선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은퇴 결정이었다. 이제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당장 올시즌 후반 꿈의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를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3세의 데스미는 2003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오클랜드에 입단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부상 때문에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싱글A 131경기에서 홈런 31개, 타점 89개, 타율 2할8푼8리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루도 40개였다.

기사 계속 읽으시려면 아래 주소 클릭하세요.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47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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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dular Monkey
Ipodular Monkey by emilybe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어폰을 MP3에 연결해 음악을 크게 듣고 있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청년은 내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귀에 이어폰이 꼽혀져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귀와 눈을 막고 살고 있습니다.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꼭 들어야 할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수많은 쇼와 드라마와 코미디와 광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거의 이어폰을 꽂아서 듣는 수준일 정도로 몰두합니다. 

많은 사람이 신(神)이 없다고 말합니다. ‘옛날에 그렇게 활발했던 신이 지금은 왜 그리도 침묵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의 기적을 일으켰던 그 신은 지금은 없단 말입니까? 애초에 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귀와 눈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눈이 다른 곳에 집중해 있으면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을 못 볼 때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 집중하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것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르짖었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 그래서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평소에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신도 그러한 상식에 기반을 두시고 계십니다. 물론 아주 극한 상황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신을 찾는 방법은 그 신에 대해 말을 하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 정말로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읽는 것처럼 신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적은 성경을 읽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입니다.

신에 대해(knowing about God) 알고 나면 신을 아는 지식이 생깁니다.(knowing God). 즉 신과 교감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어폰을 빼고 다른 곳에 집중해 있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을 진정으로 알게 될 때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세상이 신을 알지 못하게 여러 방패막이를 쳐놓고 있기 때문에 그 장벽을 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인터넷에 무료로 제공) 성서를 다른 곳에 쏠린 마음을 비운 후에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제 이어폰을 뗄 때가 됐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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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L Football: New York Giants at Washington Redskins (Nov 30)

 션 테일러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풋볼 선수였다. 마이애미(플로리다)대를 졸업한 후 북미풋볼리그(NF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지명됐던 테일러는 '미스트(Meast)'란 별명을 가진 상대 공격수들이 두려워하는 수비수였다.

 '미스트'는 사람이란 의미의 'Man' 앞글자에 동물이란 뜻의 'Beast'의 B를 뺀 것을 합성한 표현이다. 어떤 이는 '절반은 사람, 절반의 짐승(half-man, half beast)'이라고 테일러를 불렀다. 그 정도로 그는 힘이 세고 위력적인 수비수였다. 

 총기 소유 문제, 음주 운전 문제 등으로 경찰 조사를 자주 받았던 테일러는 딸 재키(당시 18개월)가 태어난 후 건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26일 새벽 1시45분 그는 자신의 집에서 침입자의 총에 맞았고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으로 긴급후송됐지만 출혈이 심했던 탓에 27일 새벽 3시30분 사망했다. 

 테일러가 총에 맞았던 당시, 나는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영화 '매그놀리아(1999)'를 보게 됐다. 옛날 영화이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노부부는 싸우고 있었다. 이 부부는 틈만 나면 언성을 높여 싸웠고 총알이 장전되지 않는 총을 들고 서로 위협하곤 했다. 이 싸움에 질려버린 아들은 어느 날 몰래 총알을 넣었는데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싸움하는 중에 방아쇠를 당겨 발사됐다. 총알은 아버지를 비켜나갔다. 그런데 그 총에 맞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아들은 부모가 싸우고 있을 때 자살을 하고자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창문을 지나가는 순간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다. 그 총알을 맞지 않았더라면 아들은 살 수 있었다. 마침 아파트에서 그물을 쳐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들은 떨어져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들은 그러나 모친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 

 


 아들의 죽음은 필연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테일러의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방탕하게 살다가 착하게 살려고 결심했던 테일러는 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사람이 왜 피살을 당했을까. 토니 던지(인디애나폴리스 콜츠 감독)처럼 좋은 사람, 좋은 감독의 아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가장 위대한 NBA 아나운서였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칙 헌은 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사망했을까.

 OOO는 왜 일찍 죽지 않고 저렇게 오래 사는 것일까. 
 
 인생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한 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삶을 운영한다. 그러나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불로장생 영약을 구하고자 했던 진나라의 시황제는 50세에 사망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도 워런 버핏도 성녀였던 테레사 수녀도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신문에서 매일 부음 기사를 접한다.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아니면 10,20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은 죽음의 선을 지나야 한다. 

 '나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우리를 욕심쟁이로 만들고 교만 덩어리로 만든다. 스포츠 스타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죽음의 피니시라인(finish line)에 다가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테일러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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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는 아니지만 (10-20달러) 기독교관련 베스트 다운로드 프로그램 톱10

10. Strengthening Small Churches (소형교회를 위한 프로그램)—Training Theme
A smaller congregation presents its leaders with unique strengths and challenges. Learn from Moody professor John Koessler, pastor/blogger Chuck Warnock, and others.

9. Giving and Receiving Feedback (교인과 교회 스태프들의 피드백을 받고 평가를 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하는 프로그램)—Best Church Practices
A survey of your congregation can be eye-opening. But it's a lot of work to build—especially one that returns trustworthy responses. These forms can help.

8. Evangelistic and Newcomer Ministry (전도적 사역 및 새신자 사역과 관련된 프로그램)—Best Church Practices
Does your church have a good system for welcoming and following up with newcomers? Bolster it with these sample materials, along with the outreach strategies included.

7. Outreach to Young Adults(청년들 전도에 관한 프로그램)—Practical Ministry Skills
Young adults are leaving and avoiding our churches. How to reach them? These articles from Ed Stetzer, Scot McKnight, and others can help.

6. Engaging Everyone in Worship (예배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Worship Essentials
Learn from Andy Crouch, songwriters Keith and Kristyn Getty, and others about drawing your congregation into worship.

5. Building a Culture of Discipleship (제자화를 위한 문화 형성에 대한 내용)—Training Theme
Help your church become a place where every member is taking on the task of discipleship.

4. Church Staff Evaluations (교회 스태프 평가)—Best Church Practices
Performance appraisals can guide and motivate your staff. Assemble yours with the help of these sample forms.

3. Church Job Descriptions (교회 역할에 대한 내용)—Best Church Practices
Get sample job descriptions for more than a dozen different church roles. People work better when the expectations for them are clear.

2. Elder/Deacon (장로/집사에 대한 내용)—Orientation Guide
Elders and deacons carry weighty responsibilities. These articles can help them grow in the areas most important for their roles.

1. Usher/Greeter (교회의 얼굴인 안내위원)—Orientation Guide
This long-standing favorite helps to equip the church worker that everyone s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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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9 Christianity Today Book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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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vis Costello
엘비스 코스텔로

몇 년 전 나는 구약성경의 전도서(Ecclesiastes)에 심취해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지혜자'는 인생의 허무함과 모순성을 강조하는데 21세기에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이성주의자와 종교의 근본주의자는 이 모순과 역설을 정리하고자 오랫동안 싸웠다. 그러나 해답을 얻지 못했고 '인생은 모순'임을 처절하게 느꼈다. '인생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됐다.

전도서에 심취했던 당시 한국에서 이회창 씨가 대선 약 40일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인생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고 생각했다. 전도서를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회창 씨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혜자가 말한 역설적 인생을 조금 알게 된 후에 분노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회창 씨가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알면서도 출마 결정을 내린 것을 보면서 그가 옳다고도 옳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LA 총영사관과 연관된 유학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 진출 한국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연관됐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미국에 머물러 있으려면 유학생비자가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유학원에 등록해야만 했다. 스포츠 기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 없었을 것이다. '이걸 보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찰나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선수의 미래와 꿈'을 생각하면 보도하지 말아야 했고 법질서를 위해서는 보도해야 했다. 역설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류 미비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법질서만 생각하면 그들을 신고해야 하지만 그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됐나를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미국 프로 스포츠가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채 돌아가고 있음을 모두 알지만 여전히 필드에 서 있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소개하는 것 역시 역설적 상황이다. ‘슈퍼에이전트로 불리는 스캇 보라스가 메이저리그를 망쳐놓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의 말 한마디가 크게 보도되는 것 또한 인생의 모순이다. '망쳐놓는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선수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부를 갈구하는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모순적이다.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는 1996년 발표 앨범인 '이 모든 허무한 아름다움(All This Useless Beauty)'에서 '허무한 아름다움'을 쫓는 인생을 노래했다. '허무한 아름다움'이란 모순적인 표현이다. 허무하지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게 인생이라고 코스텔로는 노래한다.

정말 착하게 사는 것 같은데 고통하고, 정말 나쁜 짓을 다하는 것 같은데 평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인생의 모순이다. 그런데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누가 규정하나. 고통과 평안의 의미는 누가 결정하나. 이것 역시 해답이 없다. 인생에는 모순이 기본적으로 있고 그 안에 뜻과 비전을 찾는 게 삶임을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된다.

'적과의 동침' '원수를 사랑하라'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표현은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피해갈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모순과 역설을 논리와 합리로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야구를 '세이버메트릭스' 하나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 논리로 해석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기에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어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것 같으면서도 가치가 있는 게 인생이다. 이 표현 자체도 역설적이다.

모든 게 불공평하고 모든 게 이해되지 않지만 의미를 찾으면서 인생길을 걸어갈 때 딱 하나 공평한 게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는 모순이 없기에 어떻게 사는 것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놓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모순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살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의 결정판이다. 이성주의와 근본주의가 낳은 부정적인 결과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 아닌가. 죽음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게 또한 인생이다. 나는 오늘도 모순되게 산다. 역설을 품고 산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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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컴퓨터 매거진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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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종교의 자유가 억압되는 톱10 나라에는 북한도 있습니다. 북한이 1위입니다. 월드 워치 리스트에 따르면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나라 톱10은 다음과 같습니다.

1. North Korea
2. Iran
3. Saudi Arabia
4. Somalia
5. Maldives
6. Afghanistan
7. Yemen
8. Mauritania
9. Laos
10.Uzbekistan

http://members.opendoorsusa.org/site/PageNavigator/Petition_to_Obama_Appoint_Ambassador_Religious_Freedom

위 주소로 가셔서 청원서에 서명하시면 오픈 도어 USA라는 단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많은 사람이 종교의 자유를 원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청원하게 됩니다. 북한 동포의 종교 자유를 위해 많은 한국인이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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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Little League Baseball Kid
American Little League Baseball Kid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가수 이문세 씨가 부른 '그녀의 웃음소리뿐(1987)'이라는 노래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많은 젊은이에 의해 불렸다.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어느 지나간 날엔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그날은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녀의 웃음소리뿐." 다른 것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의 웃음소리가 기억에 남는다는 내용이다.

나는 잠이 부족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어 심리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여러 방법으로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역시 명약은 '아이들의 웃음'이었다. 아이들과 킥볼(발야구), 야구, 알까기 등을 했는데 아이들은 역시 신이 났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와 모습을 듣고 보면서 나의 처진 마음은 많이 회복됐다.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아닌 '아이의 웃음소리뿐'이라는 노래를 한 곡 써야 할 판이었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은 우린 스포츠를 하면서 너무 많이 심각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최경주 선수는 한 대회에 참가해서 성적이 좋지 않자 "허허" 웃으며 하루를 마감했다고 한다. 최경주는 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선수인 것 같다. 웃으면 대충하는 것처럼 보여서 프로 선수들은 일부러라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스포츠 경기 취재를 했을 때 놀란 점은 패한 팀의 라커룸에 들어가면 거의 초상집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점이다. 져서 기분 좋을 선수는 없지만 그렇게까지 '연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이만수 코치( SK 수석코치) "패한 후에 웃는 선수는 동료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고 기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이는 아마도 "너희는 수백만 달러, 수천만 달러를 받는 선수이니 심각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듣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항상 "깔깔" 대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그러나 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도 이러한 '승부의 세계'의 맛을 봤기 때문일까. 동네 스포츠를 해도 무조건 이겨야 기쁘고 지면 슬프다. 어떤 아이들은 가볍게 한 스포츠에서도 지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사회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쟤는 승부욕이 강해. 멋지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멋져 보일 일이 아니다.

스포츠는 즐김과 보람이 핵심어다. 스포츠를 통해 즐김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보람이 따르면 금상첨화다. 스포츠는 그런데 '승리'가 최고가 됐다. 이기면 모든 게 용서된다. 사실 경기를 즐기는 선수가 가장 무서운 선수인데 즐기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축구스타 초롱이이영표 선수는 언젠가 "축구는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즐기는 사람은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즐김 자체가 승리이다. 공익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즐겁게 하는 이는 인생에서 승리한 자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자가 웃는 웃음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최근 S와 농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재미있게 농구를 했다. 재미난 말과 행동으로 함께 농구 했던 이들을 즐겁게 했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그는 승리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저녁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아이들의 소리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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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jing-Olympic-2008 - Discipline: ethnic minorities shooting
Beijing-Olympic-2008 - Discipline: ethnic minorities shooting by H.KoP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안티 기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종교 협의회 같은 단체도 있다. 나는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며 "이 땅에서 개독교는 박멸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전문성(?)도 있다. 신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 일부를 추려 성경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설픈 기독교인이 들어와서 전도하려고 했다가는 육두문자의 욕을 먹고 퇴장해야 한다. 상호 간에 욕설이 난무하면 안티 기독 활동가들이 승리한다. 그들은 "이것 봐. 믿음이 있어도 이렇게 인내가 없잖아"라고 말하면서 '승리의 축배'를 든다.

이들이 성경 다음으로 '씹기' 좋아하는 아이템은 바로 대형교회와 그 교회의 목사들이다. 엄청난 재물과 권력으로 교세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사회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대형교회 비난론'의 핵심이다. 일부 내용은 동의할 만하다. 도대체 왜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이는 종교가 권력이 됐기 때문이다. 한 신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종교를 앞세워 정치권력을 얻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는 사회에서 작은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정치가들이 종교 탄압을 못 할 정도로만 힘을 가지면 된다." 맞는 말 같았다. 조지 부시 부자,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기독교 신앙을 앞에서 대통령이 됐지만 사회가 더 발전한 것 같지 않았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그렇게 더 나아질 것도 없다. 침례교 목사였던 마이크 허커비가 '바이블 벨트'에 의지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권력은 결코 자신의 '신앙'을 정결케 하지 못한다. 정결하지 않은 신앙으로 정치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과거 십자가 운동을 보라. 신앙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했던가. 성경 속의 인물 다윗과 솔로몬도 엄청난 권력을 얻은 후에는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았던가.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권력도 종교 권력 못지않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단체다. IOC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과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의 중계권료로 미국 NBC 방송으로부터만 22 100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이렇게 큰돈이 오고 가면서 올림픽의 순수한 정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올림픽은 '돈림픽'이 됐다. 돌아버린(crazy) (money)의 축전이 된 것이다. 스포츠는 또한 도박 때문에 순수성을 많이 잃었다. 도박은 갱 집단에 의해 운영되는 게 다반사이고 이들은 돈을 벌고자 온갖 권모술수로 스포츠의 순수함에 악영향을 미친다. 심판 매수, 선수 매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적발된 건수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실질적으로 돈을 받고 져주기 게임을 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약물 복용이 쉬쉬하며 오래갔던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와 스포츠의 근본정신은 순수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고 스포츠는 초월적 경험(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표현)을 통해 행복함을 누리고자 개발됐다. 순수성이 권력에 의해 훼손된 후 두 분야는 제 기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기독교와 스포츠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그것은 억지 주장이다. 2008MBC-TV '뉴스후'에서 한국 대형 교회 목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옛날 같았으면 기자는 "목사가 저럴 수 있나?"라며 계속 쯧쯧 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된 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들은 타락한 다윗이나 솔로몬왕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들을 이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것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건전한 방향으로 돌려줄 만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것 같다. 스포츠도 이미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를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근본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동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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