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터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입니다.

너 그리고 나 우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영교 (혜화당,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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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소중한 통 두 개가 있었다.
밥통과 젖통이다.

거스름 계산에 굼뜬 나는 밥통이라고 늘 놀림을 받았다
그 후 살아남기 위해 나는 암(癌)씨에게 밥통을 내주었다.

가슴이 풍만하지 않아도 젖이 잘 돌아
시어머니 앞에서도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곤 했는데
“아들 둘 건강한 게 다 에미 덕이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지금 나의 밥통은 떨어지고 젖통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다.
둘 다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귀하다, 무척 소중하다.

어느 날
퇴근 길의 이웃 친구에게
밑반찬 좀 싸주느라
부엌 한 구석에 놓여있는
김치통과 반찬 통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는 통들도 참 많다.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만 받아 담는 쓰레기통이며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채곡채곡 받아 담고 설레는 우체통까지
언젠가는 사랑이 채워져서
누군가의 바람,
꼭 그 크기만큼 요긴함에 쓰일
기다림의 빈 통들

밤마다
나는 꿈속에서 꿈을 꾼다
밑창에 질펀한 탐욕의 찌꺼기까지
말짱하게 비워내는
빈 통의 꿈을.

-김영교 시인의 ‘너 그리고 나 우리’ 중에서-

밝은터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김영교 시인은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이 시집에 대한 일부 수익금으로 내가 미국 대학원에서 두세 과목 정도 수강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다.

위암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던 그에게는 ‘밥통’의 소중함이 얼마나 절실한가. 거스름 돈 계산에 약하다고 ‘밥통’이라고 불렸는데 그 ‘밥통’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그에게 소중했던 것은 ‘밥통’ 외에도 ‘젖통’이 있다. 젖통은 아이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통이 아닌가. 고통 속에서 낳은 아이 젖통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그 젖이 아이의 밥통으로 들어가는 이 멋진 흐름 속에서 그는 인생을 봤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밥통과 젖통은 시들해진다. 이것이 인생의 순리가 아닌가.

그리고 우리 한국인에게는 꼭 필요한 김치 통과 반찬 통. 밥통과 젖통을 유지하도록 하는 중요한 통들 아닌가. 갖가지 통과 오랜 세월 씨름한 끝에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우리는 빈 통으로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된다. 비우기도 전에 세상을 뜨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절대자가 우리에게 ‘쓰레기 통’ 좀 비우고 오라고 하지 않을까.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멋진 시였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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